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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촬영 도중 숨진 퇴역 경주마… 동물 이용 어디까지?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 KBS [태종 이방원] 말 사망사고로 촬영장 동물 학대 논란
■ 드라마 업계 “오랜 촬영 관행… 제작 구조상 어려운 점 많아”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1월 2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 동물 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말 분장을 하고 사고 모습을 재연하고 있는 한 참가자. / 사진:연합뉴스
최근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낙마 장면 연출에 사용된 말이 숨지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촬영 현장 영상이 공개된 뒤 올라온 ‘방송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월 3일 오후 1시 현재 15만4000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문제가 된 장면은 ‘태종 이방원’ 7회 방영분으로 이성계(김영철 분)가 낙마하는 장면이었다. 촬영 당시 제작진은 말의 발목에 와이어를 묶었고, 달리는 말에 제동을 걸어 넘어뜨렸다. 목이 꺾인 채 바닥에 고꾸라졌던 말은 촬영 일주일 뒤 사망했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는 해당 장면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제8조 제1항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드라마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단체들은 이어 [각시탈] [정도전] 등에서도 비슷한 낙마 장면이 있었다며 김의철 KBS 사장을 추가로 고발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KBS는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1월 20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발표하고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연출 방식이 오랜 촬영 관행이었으며, 말의 안전이나 휴식권은 제작 구조상 어려운 점이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대중도 이번 [태종 이방원] 낙마 사례와 비슷한 드라마 장면들을 공유하며 비단 해당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는 1월 25일 미디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에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소품으로 여겨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하며, 동물보호법상 관련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다.


▎KBS 1TV 대하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동물을 학대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 사진:KBS·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왼쪽부터)
“즐거움 목적으로 동물 사용하는 데 대한 논의 필요” 목소리도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다행히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하지만,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이) 질병·상해 등 신체적 손해를 입었을 때’만 머물러 있다”며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도 동물복지를 훼손하는 요소이기에 이런 것까지 방지할 수 있게끔 법이 개정돼야 한다. 꼭 촬영이 아니더라도 동물 소유자·관리자 등 책임자 의무를 법제화해서 동물복지 수준을 양호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방법이 없어서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CG(컴퓨터 그래픽)’라든지 ’더미(Dummy·모형)’ 같은 대안을 먼저 고려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윤리적 촬영 방식을 규탄하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사망한 말이 퇴역 경주마로 알려지면서 즐거움을 목적으로 동물을 사용하는 것 자체에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대표는 “도박을 위해 동물을 사용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지만, 경마나 소싸움 등은 예외 조항을 둬 허가하고 있다”며 “요즘은 국민 인식이 많이 바뀌었기에 과연 저런 게 필요한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행성 산업에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없애는 게 맞을 것이다”며 “그것이 하루아침에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것인가, 이용되는 동물의 수는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이용되는 동물에는 어떤 복지를 보장할 것인가 등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KBS는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어 말을 돌려보냈다. 최근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안타깝게도 촬영 1주일 뒤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며 “이번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시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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