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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증폭되는 ‘중국 리스크’ 해법,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한국 정치가 분열하는 한, 중국 공세 거세질 것”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싱하이밍 대사 발언은 중국식 ‘전랑외교’… 외교는 與野가 같이 가야”
尹정부, 중국과의 ‘밀당’ 불가피하지만 고난도 균형 감각 절실한 시점


▎2023년 6월 8일 싱하이밍(오른쪽) 주한 중국대사가 성북동 중국 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했다. 이날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즉각 조치를 취하며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가끔 가면을 벗어던지고 가능한 한 무자비하고 강력한 압력을 행사한다. 2017년 3월 양국 합의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반발하며 43가지 보복 조치를 시행했다. 중국은 한국 화장품과 전자제품의 수입을 불허했고, K팝 스타의 공연도 취소했다. 중국이 단체 관광을 금지하며 관광객 수가 급감하자 한국의 관광산업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클라이브 해밀턴 호주 찰스스터트대 교수가 2018년 발간한 책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그의 모국인 호주는 물론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식 ‘전랑(戰狼, 늑대전사) 외교’의 위협을 모르지 않음에도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국가들이 중국을 멀리할 수 없는 배경에는 이 같은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2023년 6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1월부터 5월까지의 대중 수출액은 497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한국무역협회가 공개한 2023년 1분기 총수출 대비 국가별 수출 비중에서도 중국은 여전히 1위(19.5%)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에 중간재와 부품을 공급하며 중국 경제성장의 파급효과를 누려왔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주중 한국대사관 경제공사 출신)는 “과거 우리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 아니라 ‘안중경중(安中經中, 안보도 경제도 중국)’이었다”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안보에 대해서도 안타까울 정도로 중국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 북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계속 중국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이 훼손된 상황에서, 2022년 3월 한국이 보수 정부로 이행하자 또 한 번 한·중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는 반대로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복원하며 한·미·일 가치동맹으로 회귀 중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과의 관계는 한·중 수교 31년 이후 최대 위기로 치닫는 양상이다.

2023년 6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양국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발언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지목한 외교관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다. 비공개회의에서의 발언이었지만, [중앙일보]를 통해 윤 대통령의 ‘워딩’이 알려졌다.

韓·中 파문 일으킨 싱하이밍 대사의 ‘거친 입’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풀렸음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면세점 등 중국 특수를 기대했던 업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뜩이나 위태롭던 한·중 관계가 임계점을 넘어서게 된 발단은 6월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돌출 발언이었다. 싱 대사는 이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현재 중·한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하지만)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탈중국화 추진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데,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주한 중국 대사로서 언행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윤 정부는 지체 없이 대응했다. 다음날인 9일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싱 대사를 초치해 “내정간섭”이라며 항의하자, 오히려 중국은 더 세게 나왔다. 10일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정재호 주중 대사를 부른 것을 중국 외교부 차원에서 외부에 공개한 것이다. “한국 측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이재명 한국 민주당 대표의 교류에 부당하게 반응하고 항의한 데 엄중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중국은 부부장(차관)도 아닌 부장조리를 내세우는 등, 격에 맞지 않는 ‘외교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중국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자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당근 외교와 채찍 외교를 번갈아 쓰는 중국식 ‘전랑 외교’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사례”라고 표현했다.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도 앞서 책에서 “중국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정치적 양보를 받아낸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외교 공세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낸 ‘학습효과’가 있다. 2000년 6월 마늘 파동(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해 관세를 인상하자 중국이 휴대폰 등 수입 중단으로 보복), 2016년 2월 사드 사태(박근혜 정부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한령’ 등 불매운동으로 보복, 이 여파로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 2021년 10월 요소수 품귀 사태(중국의 요소수 수출 중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는 설화를 일으킨 싱 대사에 대해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다. 자국 소환이나 대사 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정황증거다.

“한국경제, 지금은 중국보다 미국에서 더 번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 / 사진:김희교 교수
경제적 힘을 앞세워 보복 행위를 취하는 중국의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한·중 관계를 더 멀어지게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긴 하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2013년 이후 내림세다. 한때 우리 수출의 30%를 차지했던 대중 무역수지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심지어 2021년부터는 적자로 돌아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이 발표한 2023년 5월 대중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2022년 3월부터 15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특히 대중국 수출은 12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0.8%나 줄어든 수치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중국에 수출할 품목이 마땅치 않다. 한때 삼성전자와 더불어 한국의 ‘유이한’ 우상향 주식으로 꼽혔던 LG생활건강의 부진이 이를 입증한다. 대표적 중국 관련주로 꼽히는 LG생활건강 주가는 6월 16일 종가 기준으로 50만원을 겨우 넘기고(51만원) 있다. 불과 2년 전인 2021년 7월 말 가격은 178만4000원이었다. 최고가 대비 무려 71.5%가 떨어진 상태다. 화장품 등 LG생활건강의 주력상품이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탓에 지난해 매출(전년 대비 -11.2%)과 영업이익(전년 대비 -44.9%)에서 18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중국 소비시장과 연관성이 높은 아모레퍼시픽, 호텔신라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심지어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2022년 중국 점유율은 0.6%에 불과하다. 7년 전인 2015년의 중국 점유율 7.6%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중국이 샤오미 등 자국산 휴대폰을 ‘애국 소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리오프닝’으로 전환했지만 한국은 거의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중 관계가 냉각되며 오히려 ‘중국 리스크’를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면세점 업계만 해도 “중국 정부는 중국인의 한국 개별 관광만 허용했을 뿐, 단체 관광은 허가하지 않고 있다”며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에 거주하는 친중국 인사는 “한한령은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 입장이나 정책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풀기 어렵다”고 바라봤다.

그 결과 엔터산업에서도 탈중국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하이브, YG, JYP 등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언젠가부터 중국을 중심에 둔 마케팅 전략을 배제하고 있다. 그 대신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데 더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계의 숙원인 수출 루트의 다변화를 K컬처 분야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성취한 셈이다.

이미 한국 산업은 중국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 중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은 줄어든 대중 수출을 대미 수출 증가로 만회했다. 2021년만 해도 25.3%(중국):14.9%(미국)였던 수출 비중은 2022년 22.8%:16.1%로 좁혀지더니 2023년 1분기 들어와서는 19.5%:17.8%까지 따라붙었다. 2023년 1~5월 대미 무역수지는 143억 달러 흑자였다. 현재 한국이 가장 큰 무역 흑자를 누리는 상대국이 미국이다. 반면 중국 상대로는 2022년 9월 한 달을 제외하면 최근 1년 새 계속 적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중 수출 부진의 원인으로는 예전만 못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꼽힌다. 중국도 성장률 정체에 봉착하며 14억 내수시장의 위력이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굳이 가격이 비싼 한국 제품을 쓸 필연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역학 구도가 과거의 보완재(한국이 디스플레이·2차전지·자동차 부품 등 중간재와 부품을 중국에 공급하고, 중국이 완성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 관계에서 점점 대체재(중국이 중간재와 부품도 스스로 만드는) 관계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한·중 관계 복원할 모멘텀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


▎정영록 서울대 교수
[짱개주의의 탄생] 저자인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한·중 관계 냉각에 대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탈중국) 준비는 안 해놓고, 대립각만 세우고 있으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 원인을 단순히 제품 경쟁력 측면에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중국은(공산당) 정책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국가”라며 “지금까지 한국이 (대중 무역에서) 좋은 결과를 낸 데에는 한국과 좋게 가고자 하는 중국의 정책적 역량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다변화도 좋지만, 5억 명에 달하는 중산층을 보유하며 해마다 5%대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미국의 줄에 서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한국 주류의 시각에 대해 그는 “한국이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반도체 등 한국의 경쟁력을 고리로 내세워 미국의 중국 봉쇄에 일방적으로 참여하지 말고, 균형을 잡으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고착화되고 있는 반중(反中) 정서에 대해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소극적, 방관적인 요인이기도 하다”며 “한국이 지금 반도체 다음 먹거리를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상황이 더 악화해) 만약 중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결정적 데미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한·중 관계를 극적으로 복원할 모멘텀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중국에 우호적인 김 교수나 중국에 비판적인 클라이브 교수 모두 이 점에서만큼은 흡사한 견해를 보였다. 클라이브 교수는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노리는 주요 국가는 호주와 일본, 한국”이라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한국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한국을 향한 중국의 요구는) 대만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것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안 바뀌면 대중국 관계는 굉장히 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尹정부, 오른쪽으로 갔다가 중도로 밸런스 잡을 것”


▎2023년 6월 김태년(오른쪽 둘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찾았다. / 사진:연합뉴스
이 시점에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잇달아 중국을 찾고 있다. 김태년·고용진·홍익표·홍기원·홍성국 의원 등은 12일 베이징을 방문해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면담했다. 이어 15일 7명의 민주당 의원이 중국 정부 초청을 받아 추가로 방중했다.

중국과의 거리를 여야가 따로 설정하는 상황에 대해 정영록 교수는 “외교 문제는 여야가 같이 가야 된다”며 “국내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외교는 다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현실적 해법으로 정 교수는 “(2024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중국이 시비를 걸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정 교수는 한·중 갈등의 근원을 미·중 관계에서 찾았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을 각오한 바이든 정부의 중국 봉쇄가 대선을 위한 전술인지, 진짜 중국을 무너뜨리려는 목적인지 민감하게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중 무역이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계속해서 물밑 대화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정 교수는 안보 분야에선 우선순위를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과거에는 북한 문제가 생기면 한반도본부장이 중국부터 가더라. 하지만 북한 문제가 생기면 첫 번째로 대화해야 할 나라는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 정부가 중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스탠스를 나타내는 배경에 관해 정 교수는 “지난 10년간 너무 왼쪽으로 가 있었던 대중 관계를 수정하려면,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갔다가 차츰 중도로 밸런스를 잡는 전략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밀당’은 불가피하지만, 고난도의 균형 감각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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