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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행적 

경영권 장악 위해 검찰 수사 유도했나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신동주, 민유성과 특별한 계약 맺어… 다시 주목받는 신동주 ‘프로젝트L’
무리한 신사업으로 해임되자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과 공모해 경영권 다툼 정황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 측이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사실상 의뢰한 것과 다름 없어 보이는 정황이 최근 법정에서 공개됐다. 사진은 2017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정으로 향하는 신 전 부회장. / 사진:김경록 중앙일보 기자
롯데그룹 신동빈·신동주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그 배경과 내막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해 조력했던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의 재판 과정에서 사태의 얼개를 짐작할 만한 단서들이 발견돼 주목된다. 월간중앙이 민유성 씨 재판과정을 통해 취재한 내용과 롯데그룹 등에서 입수한 다수의 자료를 종합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경영권 장악을 위해 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유도했던 것으로 의심된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몰래카메라 기반 신사업 ‘풀리카(POOLIKA)’를 무리하게 강행하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에 걸쳐 일본 롯데그룹 각 사에서 해임됐다. 이후 갑작스럽게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는데, 2016년 6월 시작된 롯데그룹 검찰 수사를 앞두고 신 전 부회장 측이 검찰에 그룹 회계장부를 제공하고, 내사 단계에서 직접 출석까지 하면서 협조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신 전 부회장을 도왔던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정황이 드러난 것. 당시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은 롯데쇼핑, 호텔롯데 등 롯데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한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통해 내부 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협조한 인물은 나무코프(민 전 행장의 회사) 소속 직원이었다. 그는 검찰 출석 후 보고서를 작성해 검찰 내부 상황과 내사 단계 흐름을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에게 보고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사실상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며 “경영 복귀 목적의 경영권 분쟁 중이었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일군 회사에 검찰을 불러들인 셈”이라는 말이 나온다.

“부친이 평생 일군 회사에 검찰 불러들인 셈”

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투자,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사업적 움직임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을 사법 리스크 방어에 쏟아부어야 한다. 특히 해외 이해 관계자들과의 사업적 교섭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소 이후 결정되는 범죄 유무를 떠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파트너들에게 해당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해명을 이어가야 하는 불필요한 과정이 생기게 된다. 기업의 미래가 달린 사안을 눈앞에서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롯데그룹은 2016년 6월부터 시작된 검찰 수사를 통해 목전에 뒀던 ‘호텔롯데’ 증권거래소 상장을 철회하는 좌절을 겪었다. 당시 예정돼 있던 국내 외 대규모 투자와 M&A 추진사업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지연되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롯데가 오랜 기간 공들여온 수조원 규모 사업들이 검찰 수사로 인해 모두 물거품이 된 것. 이후 롯데는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으며 전례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롯데그룹이 겪은 수난은 검찰 수사뿐만이 아니었다. 2017년 7월 감사원 감사 결과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2015년 11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취득했어야 할 특허권이 관세청 점수 조작에 의해 다른 기업에 넘어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직원 1300여 명이 졸지에 일터를 잃게 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바 있다. 피해를 입은 롯데 호텔·면세점·월드·마트 노조위원장들은 신 전 부회장을 업무방해로, 민 전 행장을 알선수재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2019년 6월과 이듬해 9월 두 차례 고발했다. 민 전 행장이 신 전 부회장과의 자문료 다툼 민사재판 법정에 직접 나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취득 무산은 본인의 공”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면세점 특허 취득 무산 건 외에도 당시 롯데그룹이 겪은 어려움들이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이 공모한 계약서에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신 전 부회장은 본인의 경영 복귀가 요원하자 롯데그룹을 흔들어 그 틈을 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기반이 없었던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을 돕고 있던 숙부 신선호 씨를 통해 민 전 행장을 소개받았고, 2015년 9월 민 전 행장과 공모해 ‘프로젝트L’이라는 명칭의 계약을 체결했다. 두 사람의 주요 계약 내용에는 롯데면세점 특허 취득 방해, 롯데그룹 수사 유도, 각종 소송 제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경영 복귀 위해 롯데그룹 약점 될 정보 캐내


▎신동주 전 부회장이 2015년 10월 8일 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유성(왼쪽) 전 산업은행장(당시 SDJ코퍼레이션 고문), 조 모 변호사와 취재진 질문에 대한 답변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신동주, 민유성 두 인물의 만남과 그들이 맺은 계약 이후 롯데그룹은 계약서의 내용 그대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난 10월 12일 민 전 행장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경영권 분쟁 당시 비서실장)는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탈락, 호텔 IPO 좌절, 검찰 수사 등 롯데그룹과 임직원들이 고통을 겪었고 그 배후에 신동주 전 부회장과 민유성 전 행장이 있다고 당시 추정했었는데, 이번에 재판(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 간 자문료 다툼 재판에서 롯데그룹을 위기로 내모는 프로젝트L 계약 실체 공개)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게 다 사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증언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매수하기도 한 정황도 드러났다. 민 전 행장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롯데그룹에 약점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두 명의 전 롯데 직원과 접촉했다. 롯데 내부 정보를 캐내도록 사주했던 계약서는 지난 8월 민 전 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재판 법정에서 공개됐다. 다만, 민 전 행장은 그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 측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민 전 행장이 신 전 부회장을 상대로 추가 자문료 지급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민 전 행장 역시 과거 매수했던 전 롯데 직원 박 모 씨로부터 10억원 규모의 계약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민 전 행장 측은 당시 법정에서 “박씨가 가져온 정보는 쓸모 있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히 신 전 부회장은 경영 복귀를 위해 연로한 부친 고(故) 신격호 창업주의 말년을 얼룩지게 만드는 일도 개의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초 일본 롯데 각사에서 해임된 후 한국으로 건너와 만난 아버지의 정신건강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확인한 신 전 부회장이 부친의 건강을 지렛대 삼아 본인 해임에 대한 반전 기회를 모색했던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롯데그룹 안팎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당시 고령이던 부친 주변 환경과 심신의 안정이 매우 중요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신격호 명예회장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 부친 끌어들여


롯데그룹 인사들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7월 27일 무리한 일본행 일정을 강행했고, 8월 1일 녹취한 신격호 회장의 육성을 공개했다. 이튿날에는 비공개 장소인 신격호 명예회장 집무실에 외부 기자들을 불러 연출된 사과문을 공개하는 등 신격호 회장의 명예를 실추시킨 동시에 가장 중요한 심신 안정에 해가 되는 상황을 빈번하게 일으켰다. 신 전 부회장은 그해 10월 20일 외부인(민유성 등 당시 SDJ코퍼레이션 인물들)을 끌어들여 롯데호텔 신관 34층 집무실을 물리적으로 장악했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의 언론플레이로 신격호 명예회장 집무실과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적 영역인 치매약 복용 사실을 언론에 알렸고, 2015년 크리스마스에는 신 명예회장이 고깔모자를 쓴 사진을 공개해 재계 거물을 희화화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상을 다수 제작해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적극 활용했다. 당시 수시로 공개된 영상들은 단기 반복 학습을 통한 의도된 영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실제 서울가정법원에서 내린 신격호 명예회장의 한정후견인 판결문에도 ‘친족 등 관계인들의 이해관계나 반복된 학습 등으로 왜곡돼 있다면 법원은 사건 본인의 복리를 위해 후견 개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특히 당시 롯데그룹 주요 인사들은 신 전 부회장 측이 집무실을 점거한 후 벌인 수행원들의 잦은 교체를 크게 염려했다고 한다. 2년도 채 안 된 시간에 총 네 명의 비서실장이 임명됐는데, 이들의 평균 근무기간은 반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 측이 임명한 비서실장은 롯데그룹 직원이 아닌 만큼 책임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신 명예회장 보좌 경험도 전무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2016년 10월 신격호 명예회장의 간병인 아홉 명도 전원 교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그룹 임원들이 보기에 이들 간병인은 2014년 신격호 명예회장이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곁을 지키던 간병인들이었는데, 그들을 모두 교체한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보좌진의 잦은 교체에 당시 고령의 신격호 명예회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한 전직 롯데 임원은 “보좌진의 잦은 교체로 신격호 회장님이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그로 인해 면역력까지 저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롯데그룹 공식 비서진의 접근을 차단한 채 신 명예회장을 에워싸고 있어 심각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신 명예회장이 워낙 고령이어서 세심하게 보살펴 드려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유성 씨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부친의 주식을 취하기 위해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은 2017년 1월 신 명예회장이 납부해야 할 증여세 약 2000억원을 부친 스스로 납부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납했고, 정신이 미약한 아버지와 금전대차계약을 맺었다. 해당 계약 담보는 당시 신 명예회장이 보유한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 전량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그 후 한 달여가 지나 신 전 부회장이 담보에 대해 강제집행하기 위한 서류를 발급받았다는 우편을 받게 됐다. 신동빈 회장과 신영자 전 이사장 등 다른 자녀들도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그로 인해 신 전 부회장의 행동은 저지됐지만, 정신건강이 미약한 아버지를 기망하고 맺은 금전대차계약은 당시 세간의 입도마에 올랐다.

신 전 부회장 측은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 설립 전 진행된 롯데제과 등 계열사 주주총회장에 신 명예회장의 후견인을 거치지 않은 위임장을 들고 왔다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한정후견인이 선정돼 신 명예회장의 재산 권리를 대행하고 있었는데, 신 전 부회장 측이 후견인 몰래 아버지의 위임장 날인을 받아 비판을 자초했던 것이다.

한·일 법원 모두 “신동주 해임 정당” 판결


▎2017년 7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신 전 부회장이 미는 휠체어에 탄 채 법정으로 향하는 신격호 명예회장. / 사진:연합뉴스
“롯데그룹 전체 경영에 중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풀리카 사업을 기획했고 실행했던 바, 해당 행위는 경영자로서 적격성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평가되므로 해임의 정당한 근거.”

“롯데그룹 임직원 등의 이메일을 전송 받아 해당 이메일에 포함된 정보를 취득한 것은 원고 신동주가 롯데그룹의 다른 임직원과의 신뢰관계를 현저히 파괴하는 것이며, 롯데그룹 각 사는 이메일 서버를 공동 이용하고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3년여 정도 장기간에 걸쳐 롯데그룹 전 사를 부정하게 엑세스하고 정보 누설의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할 수 있음. (중략) 컴플라이언스 의식도 결여.”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2018년 3월 29일 원고 신동주가 본인 해임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일본 롯데 계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위와 같이 판결했다.

약 2개월 전인 그해 1월에는 한국 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8년 1월 18일 원고 신동주가 호텔롯데와 롯데호텔부산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직 해임 손해배상소송에서 아래와 같이 판결했다.

“원고 신동주는 경영자로서 피고들에게 객관적 피해를 주었다. (중략) 원고 신동주는 그룹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터뷰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 주요 내용 중 일부는 사실에 부합하는지 증명할 증거도 부족하다. 인터뷰로 인해 피고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경영자로서 업무에 피해를 입힌 것이 인정된다.”

신 전 부회장이 재직 중 회사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해임됐다는 사실이 한·일 양국 법원에서 공식 인정된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한·일 양국 법원에서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지만, 모두 최종 패소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과 일본 법원에서 ‘경영 부적격’ 판결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됐다.

신 전 부회장은 그럼에도 2016년부터 올해까지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매년 주주총회에서 이사직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윤리적 문제까지 일으킨 인사가 경영에 복귀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의 경영 복귀 주장에서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변제, 재발 방지 약속은 전혀 없다”며 “오로지 현 경영진에 대한 비판 일색에다가 롯데그룹 경영 정상화를 위해 본인이 나서야 한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주주들이 자신을 다시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만들지 않은 채 공허한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주주 회유도 실패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신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다 일본 롯데그룹 각 사에서 해임됐다. 사진은 2017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정을 나서고 있는 신 전 부회장. / 사진:김경록 중앙일보 기자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 표 대결에서도 유리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막대한 돈으로 주주 회유를 시도했을 때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신 전 부회장은 2016년 2월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분율 27.8%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한 롯데홀딩스 종업원주주회 130여 명에게 1인 당 약 2억5000만 엔을 안겨주겠다는 ‘베네핏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종업원지주회 소속 한 명 당 약 1만 주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9000주를 자신에게 액면가로 팔면 나머지 1000주에 대해 상장을 거쳐 약 2억5000만 엔의 차익 실현을 보장하겠다는 주장이었다. 종업원지주회가 보유한 주식(27.8%) 대부분을 취해 신 전 부회장 지배 하에 있는 광윤사 지분(28.1%)을 합쳐 과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종업원지주회는 그러나 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이 그룹 임직원에게 돈으로 변제할 수 없는 ‘불신’을 남겼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본인 사정은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지적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직원들의 이메일을 몰래 훔쳐 본 사실이 임직원들 마음에 벽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은 특히 한국에서 진행됐던 민유성 전 행장과의 자문료 다툼 재판 법정에서 한국 롯데그룹을 음해하기 위한 모의 내용이 담긴 프로젝트L 계약에 대해 “나는 대기업 회장이기 때문에 계약서에 날인만 했고 내용을 보지 않았다. 세세한 내용은 숙부인 신선호가 확인했다”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기까지 했다.

신 전 부회장 본인 주도 하에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했던 ‘도둑 촬영’ 기반 풀리카 사업에 대해선 “외부 법인(몰래카메라 조사회사)의 출입 행위에 대해 본인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 무단 촬영이 곧바로 법령 위반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 검토 및 진행, 이사회 설명 등은 스도(부하직원)가 한 것이지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신격호 유서엔 일찌감치 “롯데 후계자는 신동빈”

특히 3년여간 일본 롯데 임직원 이메일 약 30건을 몰래 받아본 사실에 대한 그의 해명은 현지 임직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이메일이 어떤 목적에서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전송되고 있는지 몰랐다. 나에 대한 해임이 거론되는 시점에 긴급 피난적 정당방위 차원에서 ICL(롯데그룹 이메일시스템 제공회사, 대표가 신 전 부회장의 대학 동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임직원 이메일을 전송해 달라고 구체적 의뢰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작고하기 직전까지 “아버지가 나를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사후 공개된 유언장을 보면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87년부터 일본 롯데 경영에 참여했던 장남(신동주 전 부회장), 1990년부터 한국 롯데 경영에 나섰던 차남(신동빈 회장)의 행보를 묵묵히 지켜본 신격호 명예회장은 2000년 3월 어느 토요일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사무실에 나가 펜을 들었다.

“롯데그룹 후계자는 신동빈으로 한다. 신동주와 가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말고 그룹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

신 명예회장은 같은 내용을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로 작성해 날인까지 마친 후 집무실 금고에 고이 넣었다. 그리고 신 명예회장이 남긴 유일한 유서가 2020년 6월 그의 유품 정리과정에서 나왔다. 밀봉된 유서는 일본 법원에서 상속 대리인이 모두 모인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됐다.

유서 공개 당시 신 전 부회장 측은 “해당 유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 명예회장이 남긴 유서에서 법적 효력이 성립되기 위한 일부 기입사항이 누락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를 두고 “신 전 부회장 측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작성한 문서에 일부 항목을 기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서로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했지만 “신 명예회장이 한창 왕성한 경영활동을 이어가던 시기 2세 승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명확한 어조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서가 맞다”고 말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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