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Home>월간중앙>투데이 포커스

혁신위, 비대위의 얄궂은 운명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정당, 급할 땐 삼고초려 하지만 한숨 돌리면 용도폐기 수순
정우택 국회부의장, 자서전에서 ‘인명진 비대위’ 비화 밝혀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 발족 일화를 소개한 정우택 국회부의장. 사진 중앙포토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12월 11일부로 활동을 종료한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혁신위는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간판을 내리게 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알아볼 기회를 줘 많이 배우고 나간다”고 고단한 심정을 토로했다.

정당이 위기에 처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바로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이다. 환골탈태의 깃발을 내걸지만, 번번이 당내 기득권에 가로막혀 용두사미로 끝나곤 하는 게 이들 임시 기구들이다.

2016년 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비대위를 내세웠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노동운동, 도시빈민운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는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를 기울어가던 새누리당 비대위의 선장으로 점찍었다. 하지만 당시 71세이던 인 위원장이 구순 노모를 돌봐야 하는 데다 부인도 반대하는 바람에 비대위원장직 제안에 난색을 보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인 위원장과 교섭했던 이가 정우택 현 국회부의장이다.

정 부의장은 최근 펴낸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숙명〉에서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로 사면초가에 처한 새누리당이 2016년 12월 23일 인명진 비대위원장 선임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는 시점까지도 당사자의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비대위원장 인선 발표부터 하고 당사자의 사후 수락을 얻어내는 벼랑 끝 전술이 동원됐다는 것.

정 부의장에 따르면 당시 인 목사는 사전 교섭 과정에서 고사 의지를 밝히며 완강히 버텼다고 한다. 알려진 바대로 노모와 부인의 반대로 인해 도저히 비대위원장직을 맡을 수 없으니 만남조차 없던 일로 해달라고 못을 박았다는 것.

비대위원장 선임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까지 잡아 놓은 처지에서 눈앞이 깜깜해진 정 부의장은 인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신다는 발표부터 덜컥 해버렸다고 정 부의장은 돌이켰다.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규모 탈당이 벌어지고, 당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비상대책위를 최대한 빨리 구성해야만 했다. 인명진 목사 외에 대안에 없는데 그가 수락을 거부하는 외통수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9시 30분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 인선 결과를 언론에 발표부터 해 버린 정 부의장은 기자회견 뒤 부랴부랴 서울 약수동 인명진 목사의 아파트를 찾았다고 한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발을 구르며 노크도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정 부의장은 다급한 SOS 문자를 인 목사에게 보냈다.

“목사님, 문 좀 열어주세요, 제가 코트를 안 입고 오는 통에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습니다.” 그제야 문은 열렸다는 것이다.

인 목사 부인이 끓여 준 국수로 점심을 때워가며 설득에 나섰지만 한동안 인 목사는 묵묵부답,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이날 중으로 인 목사가 언론에 수락 기자회견을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은 회생불능을 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여기서 3시에 죽겠습니다. 당은 살려주십시오.”

정 부의장은 인 목사에게 매달리듯 이렇게까지 애원했다. 마침내 오후 4시 인 목사가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면서 정 부의장이 벌인 한바탕 ‘활극’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 부의장은 “나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고 자서전에 토로했다.

정당은 이렇듯 자신들의 값어치가 떨어지면 당 밖의 인사들을 불러들여 흥행 요소로 활용한다. 인 목사처럼 많은 외부 인사들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총대를 메지만 정당은 그 과실을 탐할 뿐 나무에 물 주고, 가꾸는 일에는 뒷전이다. 이번 인요한 혁신위를 띄운 국민의힘도 그런 우려를 남기고 있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