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검열단원 육·해·공군 합쳐 20~30명… 중앙정보부는 빠져
■ <월간중앙> 1980년 6월호 ‘可’ 도장 찍고 발매 후 회수 소동
■ 1980년 여름, 보도검열단 내부에서 ‘언론통폐합’ 얘기 나돌았다
■ 신문사는 삭제 기사 변칙으로 게재하며 신군부에 저항
■ 보도검열단 격려금 ‘최규하 50만 원’ ‘전두환 100만 원’… 실세 직감
전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 소속 위영일(59) 씨. 그는 1980년 6월호 <월간중앙> 보도검열을 이유로 3개월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고 군에서 밀려난 것을 평생 가슴의 상처로 안고 살았다. 그가 28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언론검열시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내 군인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결정타였다.”
차가운 막국수와 소주를 앞에 놓고 위영일(59) 씨가 처음 꺼낸 말이다. 지난 10월31일 춘천 집에서 만난 위씨는 취재팀을 보자마자 허기부터 달래자며 막국수집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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