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賞은 후하고 罰은 신중히 손위 신하들 신뢰로 포용 

적벽대전의 승리와 전후 처리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손권은 부하의 장점을 주로 보고 단점은 적게 보려 했다. 신하가 잘한 것은 많이 칭찬했지만 불만스럽거나 섭섭한 것은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 적벽대전 때 항전을 주장해 승리로 이끈 주유 등을 크게 포상하면서도 항복을 주장했던 장소를 내치지 않는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모두가 손권으로부터 신뢰받는다고 믿게 했다. CEO로서 큰 능력이고 용인술이다. ▶공명이 동남풍을 기원한 배풍대.적벽대전은 오나라와 손권에 있어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위나라 조조 측에서 본다면 승리는 곧 천하통일을 의미하지만 패배해도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는 압도적인 국력 차가 있었다. 조조는 이미 나라의 기반이 단단하고 정권도 확고했지만 손권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만약 손권이 패배한다면 오나라는 그냥 와해될 형편이었다. 손권이 싸우지 않고 항복했어도 오나라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쪽의 병력 수를 보더라도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조조군은 80만 대군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지만 2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조가 북쪽에서 거느리고 온 군사가 기병을 중심으로 약 15만 명, 항복한 형주군이 수군을 중심으로 5만 명 정도였다. 형주군은 조조군에 편입된 지 얼마 안 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오나라 손권군은 모두 끌어 모으면 5만 명은 될 것이나 바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3만 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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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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