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이 문화예술후원 프로젝트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로 청중들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첫 주자로 첼리스트 양성원이 나섰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뮤직 베라인, 파리의 살플레옐, 뉴욕의
링컨 센터와 카네기 홀, 워싱턴DC의 테라스 극장,
동경의 오페라 시티홀 등 세계 유명 연주장에서 공연해
주요 언론과 청중들에게 호평을 받은 아티스트다.
『월간 객석』의 국지연 취재팀장이 양 교수를 만나
음악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3월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의미 있는 연주회가 열렸다. 문화예술후원 프로젝트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의 첫 막이 오른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 전용홀인 세종 체임버홀을 활성화하고 뛰어난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 몽블랑과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시리즈의 첫 무대는 첼리스트 양성원(48)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가 꾸민 실내악 연주였다. 양 교수는 시리즈의 모든 곡에 참여할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실내악 공연이, 하반기에는 베토벤 트리오, 소나타 전곡 연주가 펼쳐진다.3월의 봄날 밤 비발디와 하이든, 차이코프스키의 우아한 실내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청중들은 모두 눈을 감고 인생을 추억했다.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시간이었다.여운이 깊었던 첫 무대가 끝나고 4월 13일 양 교수를 연세대 교정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5월 30일에 있을 멘델스존의 8중주와 슈만의 첼로 협주곡,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연주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이었다. 9월에는 그가 속한 트리오 오원과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을 연주하고 12월에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을 완주할 계획이다.“지난해 11월 세종 체임버홀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국내 아티스트와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공연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와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세종 체임버홀은 울림과 분위기가 실내악을 하기 좋아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 연주하게 될 레퍼토리는 모두 기존 무대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편성의 작품들이다. 5월에 연주하는 멘델스존 8중주 역시 전 악장이 아닌 2악장만 따로 서곡으로 연주한다.“보통 모든 악장을 연주하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서정적인 2악장만 따로 떼서 연주할 예정입니다. 마치 화분들 속에 꽃 한 송이가 있는 느낌처럼 말이죠. 슈만의 첼로와 현을 위한 협주곡도 오케스트라 곡보다 소규모 편성으로 체임버홀과 어울리는 색채를 찾으려 했습니다. 훨씬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날 거예요.” 이어지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역시 낭만적인 서정과 아름다운 선율이 봄날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실내악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매료되면 빠져 나오기 어렵지요. 음악을 안다는 것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연주 역시 잘하는 연주가 있고, 감동을 주는 연주가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연주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예술은 영혼의 소통양 교수는 말했다. “결국 연주는 혼을 찾는 과정”이라고. 그래서 그가 연주를 하며 기다리는 것도 음악의 매력과 신비로움을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이 하나 되어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 “어떤 공감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주자는 혼을 찾는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고 때로는 좌절도 느끼지요. 그런데 실내악은 청중과 연주자의 관계가, 더 나아가 인연이 소리와 만나 또 다른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장르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연은 더 깊어지고, 어느 순간 자신을 잊고 음표 안으로 빠져 들지요. 음악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그의 말처럼 몇백 년 전 작곡한 하이든과 베토벤의 악보 속 음표들이 연결되어 음악이 되는 과정은 오묘하고 아름답다. 진정한 음악이 연주로 완성될 때의 기쁨과 함께 나누는 행복, 이것이야말로 고되고 힘들어도 연주자들을 계속 무대로 이끄는 이유일 것이다.“첼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무통 안에 붙어있는 네 개의 줄로 음악을 만들고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 신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중도 그 신비로운 순간 때문에 음악회를 찾는 것일 테고요.”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짜 얼굴이라고 말했다. “펜으로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노래로 전하는 사람도 있지요. 예술은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은, 보다 부드러운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는 전해야 할 메시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음악은 그 메시지를 은밀히 전해주지요.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연주자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고 고요만 남을 때 음악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비로소 작곡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고요함을 담아내다
▎첼리스트 양성원(오른쪽)이 속해 있는 트리오 오원의 공연 실황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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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교수는 9월, 12월에 연주할 곡의 작곡가 베토벤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을 음악으로 보여주고 증명한 작곡가라고 했다. “베토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 작곡가지요. 그의 음악의 혼을 찾기 위한 작업은 어렵고 험난하지만 그 계단을 올라갈수록 저 역시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통속적일 때도 있습니다. 구조 역시 단단하지만 한 편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자유로움이 존재합니다. 연주자 자신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이런 복합적인 요소를 하나로 아울러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베토벤 음악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지요.”그는 “베토벤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스스로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한 모차르트와 하이든, 헨델과 바흐를 넘어 또 다른 자신만의 산을 만들었던 음악가였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스스로 벽을 뚫고 나갔던 사람이지요. 모차르트처럼 오페라를 쓸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기악곡으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고, 바흐 푸가를 다시 공부해 후기에 자신만의 대푸가를 작곡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줄 작품을 썼지만 또 한편으로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도 많이 썼지요. 그야말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안 뒤에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살려 단점과 어려운 환경, 고난과 죽음까지 뛰어넘어 음악으로 뚫고 나갔던 음악가였습니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지금 이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가슴을 음악으로 두드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음악은 그래서 힘이 있고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그는 가을에 시작되는 베토벤 곡의 연주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고요한 베토벤 음악만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말년에 베토벤이 들었던 소리는 아마 내면에 존재했던 소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 소리를 찾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소란한 세상을 등지고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들었던 소리이기에 그의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은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빠져들 때 비로소 최고의 이상이 드러나는 법이지요. 제가 사라지고 고요함이 남은 그 자리에 오로지 베토벤, 그의 음악만이 남기를 바랍니다.”예상치 못한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을 때 우리는 깊은 위안을 받는다. 그 역시 우연히 들은 학생의 연주를 듣고 하루 종일 그 연주의 여운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연주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오로지 음악만이 남을 때, 그때는 다시 어린 시절 첼로를 잡았던 가장 순수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도대체 그 신비함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살아있다는 것을요.”살아 있는 것이 음악만은 아닐 것이다. 정신이 깃든 모든 것은 생명력을 갖는다. 아름다운 물건, 아름다운 사람은 모두 예술이다. 아름다운 가치를 찾는 것이 예술이라면 음악은 예술의 꽃이다. 그 가치를 찾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의 영혼은 늙지 않는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말처럼 음악은 언제나 젊고 예술은 살아있다.- 글 국지연 월간 객석 취재팀장·사진 오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