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홍콩의 수퍼 컬렉터 애드리언 쳉 

기업경영에 예술을 접목한 문화기업인 

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사진 송인호 사진작가
홍콩의 슈퍼 컬렉터 애드리언 쳉을 인터뷰했다. 홍콩 부자 3위 청유퉁의 손자인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2015 세계 수퍼 컬렉터 76위에 선정된 인물로 홍콩뿐만 아니라 전 세계 현대 미술계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예술운동가다.

▎애드리언 쳉이 미술품을 컬렉션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박물관의 기능처럼, 인류학적 배경이 농축된 작품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애드리언 쳉(Adrian Cheng)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가 홍콩뿐만 아니라 전 세계 현대 미술계에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컬렉션 배경과 경향을 알고 싶었고, 그가 이끌고 있는 K11아트파운데이션의 활동상도 궁금했다. 그가 홍콩의 수퍼 컬렉터인만큼 홍콩을 포함하는 중화권 미술시장의 현황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물론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그는 예술을 예술로 한정짓지 않고 일상으로 끌어들여 예술의 대중화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을 소유하고 예술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새로운 사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는 실제 자신의 아트 컬렉션을 비즈니스에 즉각 적용하기로 유명하다. 예술운동을 통해 작가도 성장하지만 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 좋은 사례가 K11 쇼핑몰이다. 애드리언 쳉이 홍콩의 젠사쥐에 오픈한 더 마스터피스의 K11쇼핑몰은 예술·인문·자연을 결합한 트렌디셔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쇼핑몰 곳곳에는 현대 미술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전시회도 지속적으로 열린다. 쇼핑몰에서 특별전시가 개최되면 매출도 동반 상승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애드리언 쳉은 대중이 미술품을 쉽게 관람하고 즐기도록 함으로써 문화소비층의 욕구도 충족시키고 기업도 더불어 성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예술운동가이자 기업가인 셈이다.

필자는 지난 1월, 상하이의 K11 미술관 오프닝 현장에서 그를 만나 처음 인사를 나누었고,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는 3월 24일~ 26일 기간 중에 시간을 정해 그를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인터뷰 장소인 K11 본사 VIP룸에 도착하자 애드리언 쳉이 캐주얼 차림으로 필자를 맞았다. 필자 역시 구면이었기에 그와 편안하게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예술·인문·자연을 결합한 K11 쇼핑몰 운영


▎애드리언 쳉이 상하이에서 운영하는 K11 모던미디어갤러러 (Modern Media Galley)의 프라잇비트 아트 공간. 그는 컬렉션한 작품을 창고나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쇼핑몰이나 기업의 특정 공간에 설치하거나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애드리언 쳉은 2015년 미 포브스 선정 세계 71위 부호이자 홍콩 부호 3위에 오른 청유퉁(鄭裕彤)의 손자다. 청유퉁은 아시아 최대 주얼리 그룹인 저우다푸(周大福)와 부동산 개발회사인 뉴월드개발의 설립자다. 백화점·쇼핑몰·면세점·컨벤션센터· 호텔·리조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애드리언 쳉은 현재 뉴월드개발 부회장, 저우다푸 이사, 그리고 K11아트파운데이션(KAF)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쉽게 말해 재벌 기업의 3세다. 재벌이라고 해서 누구나 뛰어난 수퍼 컬렉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세계적 수퍼 컬렉터가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유년시절부터 중국과 한국·일본 등을 여행하며 아시아 각국의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점차 커져 단초를 제공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화에 집중하게 된 것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다. 이후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배우고 익힌 식견을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대받는 유명작가는 물론 신진작가의 작품에도 과감히 투자하며 자신만의 컬렉션을 확장해가고 있다. 그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재력을 바탕으로 단순히 예술을 향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K11아트파운데이션을 창립, 미술관·레지던시를 포함하는 실험적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데까지 확장됐다. K11아트파운데이션은 아티스트 인큐베이터다. 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작품을 직접 사거나 팔지는 않고 아티스트를 키우고 프로모션을 돕는 역할을 한다. 중국 최초의 무국적 비영리단체로 신진작가들을 양성하고 미술의 대중화와 공공 미술교육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예술재단이다.

그는 인터뷰 중에 자신의 컬렉션 중 일부를 소개했다. 이미 유명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구입한 릴리 레노 드봐르(Lili reynaud dewar)라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과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라는 스위스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두 달 전, 필자가 상하이 K11의 모던미디어갤러러(Modern Media Galley) 특별룸에서 만났던 구웬다(谷文達)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이들 작품들은 작품 안에 역사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컬렉션 기호를 일부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게 좋은 작품과 아트 컬렉션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스토리, 한마디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제게는 미학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메시지가 중요하죠. 작가만의 사적인 소재와 순수한 의도 또한 중요하지만, 동시에 파워풀한 이미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트 컬렉팅이란 후대세대에게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거죠.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은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이고 기록적인 자산이 아니겠습니까!”

관계지향형 컬렉터, 작가와 작품 공부한 뒤 구매


▎아트바젤 현장에서의 애드리언 쳉(가운데), 홍콩의 재벌 3세이자 명사인 그는 예술을 소유하고 예술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새로운 사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맨 오른쪽이 필자.
요약하면, 인문학적 배경이 탄탄한 작품을 소장하여 당대에 널리 소개하는 것이 자신의 컬렉션의 목적이라는 얘기다. 필자는 이것이 그가 미술 컬렉션에서 강조하고 있는 ‘미술의 민주화(Democratize arts)’라고 여겨졌다. 그의 이런 경향은 일반적으로 부호들이 미술품을 투자나 재테크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현대 미술시장의 소비성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매나 아트페어의 특징에 대해서도 그에게 물었다. 그는 “경매는 소장가치가 높은 작품을 적합한 가격에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아트페어에서는 다양한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헌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따로 있었다. 우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먼저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한 후 구매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의 컬렉션 경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마침 미리 준비해간 필자의 박사논문 영문 요약본을 보여주었다. 논문의 제목은 <미술품 구매 목적에 따른 미술소비자 유형에 관한 연구>다. 미술소비자의 유형을 4종류(예술지향형·장식지향형·투자지향형·관계지향형)로 나누고 각각의 유형에서 미술품을 구매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논문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한 후 그에게 스스로 어떤 유형인지 스스로 선택해보라고 요청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예술지향형 성향을 갖고 있지만, 실제 컬렉션에서는 관계지향형 소비에 가까운 듯 합니다. 저는 예술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쌓고 있습니다. 동시에 리서처를 많이 하는 것은 물론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도 자주 방문합니다. 이처럼 사람들과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면서 예술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 같군요.”

관계지향형 소비자는 미술전문가나 또 다른 소비자와 관계를 중요시한다. 이들은 작품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취향이 비슷한 소비자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즐거움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미술품 수집의 선호도도 정해진다.

그렇다면 그와 관계지향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누구일까? 민감한 질문일 수 있었지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K11아트파운데이션 소속 작가들, 그리고 협력적 관계를 갖고 있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갤러리의 큐레이터들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K11이 운영하는 핵 스페이스(Hack space)의 기획을 함께한 런던 서펀타인갤러리(Serpentine Gallery)의 한스 울리치 오브리치(Hans Ulrich Obritch)를 비롯해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 모마의 아트디렉터 등을 초청, 40여 명의 중국 작가들을 소개했다. 이처럼 그는 관계지향형 컬럭터답게 중국 작가들을 세계 미술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세계의 뛰어난 미술전문가와 맺어주는 역할을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의 컬렉션 방향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에게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서 그가 컬렉션했거나 관심 있는 작가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선뜻 함께 작품을 보며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고 있는 홍콩 컨벤션전시센터는 인산인해였다. 입장객 초과로 오후 2시부터는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시물이 붙을 정도였다. 컨벤션센터 1층부터 3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장에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부호이자 명사인 애드리언 쳉이 전시장에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아이를 안은 한 관람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즉석에서 작가의 특징과 작품에 대해 그 관람객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젊은 작가인 만큼 컬렉션하기에 좋은 가격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필자에게 여러 갤러리리스트와 작가를 소개하며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스에 들러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회화가 아닌 설치미술이거나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이 많았다. 또 대부분 젊은 중국작가들이었고, 인문학과 사회적 배경을 중요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처럼 그는 컬렉터로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나아가 자신의 확신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가 미술품을 컬렉션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박물관의 기능처럼, 인류학적 배경이 농축된 작품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20세기 초 큐비즘이 나오게 된 배경,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다이즘이 발생된 배경처럼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대를 기록하는 이미지가 있는 작품에 끌린다. 우리 시대에 어떤 미술품이 있었고 그러한 미술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능동적인 아트컬렉터이자 문화를 아는 기업인


▎홍콩 아트 바젤에서 애드리언 쳉이 선택한 작품은 회화가 아닌 설치미술이거나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이 많았다.
최근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홍콩에서 새로 문을 연 한 레스토랑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뜬금없이 레스토랑을 소개한 이유는 그 레스토랑에 그가 주목하는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색적이고 차별화한 전략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예술운동과 일치했다. 그는 8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컬렉션한 작품을 창고나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대부분 쇼핑몰이나 기업의 특정 공간에 설치하거나 전시한다. 그 외의 다른 소장 작품들은 2019년 베이징에 문을 여는 K11미술관을 통해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신의 애착을 밝히기도 했다. K팝에서 IT, 그리고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한국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기업인인만큼 한국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고, 그 때문에 한국을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기업과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여러 명의 한국작가들과도 지인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홍콩 국민들에게 애드리언 쳉은 프린스(왕자)로 불린다. 필자가 만난 그는 단순히 돈 많은 슈퍼 컬렉터가 아니라 인문학적이고 미학적인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아티스트·전문가들과의 교류를 중요시하는 능동적인 아트컬렉터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문화기업인으로서 예술을 대중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기업경영과 예술을 접목하는 등 나름의 방식을 열심히 전파하는 예술운동가였다.

- 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사진 송인호 사진작가

201605호 (201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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