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예계 거물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과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의기투합했다. 신영균 일가가 소유한 명동 증권빌딩을 부티크 호텔로 바꾸기 위해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신 회장이 소유한 서울 강동구 아리수로 ‘스테이지 28’ 레스토랑과 태권브이 박물관 ‘브이 센터’에서 장장 4시간 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YK(영균)’בYG(양군)’ 영화배우 신영균(88)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이 명동에 부티크 호텔을 개설한다. 신영균 회장은 “명동예술극장 옆 명동증권빌딩 2층 일부와 3~5층을 리모델링해 5월 중 ‘호텔 트웬티에이트(28)’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텔 이름에서 ‘28’은 본인의 출생년도(1928년)를 의미한다. 82년생인 기자에겐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옛날이다. 반세기 이전에 태어나신 분이 호텔을 연다니. 굳이 28을 강조하는 걸 보면 미사리에나 어울리는 호텔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그런데 함박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건네는 모습이 꽤나 트렌디하다. 댄디한 네이비 수트에 화이트 행커치프를 매치한 모습에서 트렌디한 패션 감각이 느껴졌다. 선글라스를 벗으니 다시 한 번 여든 여덟의 나잇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맑은 눈동자와 마주친다. “우리나라에서 드문 부티크(boutique) 호텔이 될 것”이라는 말이 비로소 귀에 들어온다.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 활발히 활동했지만, 역시 배우인지라 해외 호텔 깨나 다녀보셨나 보다. “SLH(Small Luxury Hotels of the World)와 제휴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20~30대 해외여행족에게는 잘 알려진 SLH는 속칭 ‘고급진’ 공간과 서비스로 유명하면서도 가격도 나름 나쁘지 않은 브랜드다. 80개국에서 520여개 호텔 체인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국 호텔과 제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류 거점 명동에 ‘호텔 28’ 5월말 오픈호텔 28은 83개 객실을 갖춘 부티크 호텔이다. 부티크호텔(boutique hotel)이란 규모는 작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과 인테리어, 서비스로 차별화한 호텔. 고급 맞춤 의상을 뜻하는 패션 용어 ‘오트퀴트르 부티크’에서 유래했다. 대형 호텔 체인이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부티크호텔은 개성있는 콘셉트를 내세운다. 우리나라에선 W호텔 등이 대표적인 부티크호텔이다. 신 회장이 오픈하는 호텔 28은 문화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조합한 수준 높은 한류 문화가 콘셉트다. 건물 입구부터 흑백영화를 상영하고, 객실에도 영화 스틸컷이나 촬영용 스탠드 같은 소품을 활용한다. 호텔 조명도 촬영용 조명을 사용하는 등 영화적 색채를 입혔다. 신 회장은 “70년대 명동은 문화 중심지였다. 그런데 최근엔 쇼핑이 명동 대표 상품이 됐다. 명동을 다시 문화 중심지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한다.60~70년대 충무로에서 신 회장은 지금으로 따지면 배우 유아인 씨만큼 유명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가 대만에서 개봉하면 질서 유지를 위해 기마경찰대가 출동하던 원조 한류(韓流) 스타다. 64년 홍콩 스타 고(故) 린 다이가 신 회장을 사모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말도 돈다. 신 회장은 “(기혼인) 내게 당시 린 다이 씨가 같이 살자고 한 적이 있었어요”라고 후일담도 털어놓는다.
원조 한류스타 ‘YK와 YG의 콜라보’
▎5월말에 오픈하는 ‘호텔 28’ 조감도. 개성있는 부티크 호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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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호텔 빌딩에 YG엔터테인먼트가 입점했다는 사실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YG푸즈가 명동증권빌딩 1층과 2층 일부에 ‘YG리퍼블릭(YG Republique)’ 브랜드로 ‘삼거리 푸줏간’ 등 3개 외식매장을 열었다. 호텔 5층에 자리 잡게 될 호텔 레스토랑도 YG푸즈가 위탁운영한다.요즘 말로 ‘YK와 YG의 콜라보(collaboration· 공동작업)’는 어떻게 성사된 걸까. “아들(신언식 한주홀딩스코리아·제주방송 회장)이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노희영 YG푸즈 대표와 친분이 있어요. YG푸즈의 거칠면서 세련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도 우리 호텔 콘셉트와 잘 어울리고요. 6일 밤엔 양 대표, 노 대표와 조촐한 파티도 열었는데 중국인 팬들이 새벽 3시까지 진을 치고 있더군요.”젊은 세대가 가장 선망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양현석 대표다. 연예계라는 화려한 자리에 있으면서, 주식 대박으로 재벌 소리까지 듣는다. 신 회장도 예전엔 YG엔터테인먼트의 싸이나 빅뱅 버금가는 글로벌 스타였다. 게다가 자녀에게 물려준 자산까지 따지자면 양 대표보다 더한 거부(巨富)다. 때문에 두 사람이 한류 열풍의 진앙지에서 손을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다. 명동이 신(新) 한류 메카로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대종상·청용영화제·백상예술대상 등 최고의 상을 거머쥔 그가 사업에 뛰어든 건 가족들을 위해서다. “예전엔 영화배우가 상당히 위험한 직업이었습니다. 영화 찍다 죽으면 영광이긴 한데, 가족 생계는 걱정되더라고요.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대책을 미리 세워두려고 사업을 시작했죠.”그래서 처음 시작한 사업이 극장 사업이다. 동업자와 함께 공동으로 금호극장을 사들였다. 여기서 번 돈으로 충무로 명보제과를 사서 빵집을 운영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맥도날드와 합작해 200여 개 매장을 운영한 적도 있다. SBS 5대 주주, 서울증권 2대 주주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댔다. 지금도 극장 사업(명보아트센터), 빌딩임대업(신영상가 등), 방송사업(제주방송), 부동산 개발(제주 색달동), 박물관(브이센터), 요식업(스테이지28, 더베이크), 테마파크(코코몽에코파크) 등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호텔 사업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하나투어와 합작해 관훈동 센터마크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이렇게 다양한 사업에서 막대한 재력을 쌓은 비결이 뭘까. 그는 “재밌는 일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꼭 돋보이는 일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행복한 일을 할 때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하지만 주변에선 철저한 준비를 성공 비결로 본다. 영화평론가 김두호 ㈜인터뷰365 대표는 “굳이 대사를 암기할 필요가 없던 무성영화 시절에도 신영균 씨는 진솔한 감정을 끌어올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나리오를 암기했던 배우였다”고 기억했다.
매일 헬스장에서 5000보 걷는 체력
▎신영균 회장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다. 신 회장이 2012년 에르메스코리아가 증정한 디렉터스체어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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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8이란 이름은 실시간 유행이 바뀌는 명동이란 장소와 다소 언밸런스하다. 왜 28이었을까. 탄생년도는 인생의 시작점이다. 시작이란 그에게 ‘초심’을 상징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배우’로 규정한다. 인생에서 처음 시작한 직업이 배우였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직후 2년간 그는 <청춘극단>을 따라다니며 연기를 배웠다. 여기서 배운 초심이 그의 평생을 좌우했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를 개업하기도 했지만, 결국 배우로 되돌아왔다.그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은 후시녹음을 하던 무성영화 시대였다. 굳이 대사를 암기하지 않아도 됐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야만 촬영장에 들어갔다. “(연극)배우는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란다.기부를 할 때도 기준이 철저하다. 첫째는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 둘째는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을 돕는 일이다. “<청춘극단>에서 치과의사로 잠시 전향한 이유가 바로 생계 때문이었어요. 치대 재학 시절에도 한국전쟁이 터져 부산에서 워낙 고학(苦學)을 했죠.”그 때의 초심이 지갑을 열게 하는 걸 보면 ‘호텔 28’이라는 이름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마 가진 것도 없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는 배우의 길을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려던 건 아닐까.진위를 확인코자 흙수저론을 꺼내봤다. 젊은이들의 취업난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행복’이 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주연보다 조연이 더 행복할 수 있어요.”여든여덟 인생 경험이 뇌리에 가득 주름 잡혀 있을 텐데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열린 조언을 건네는 게 놀랍다. 20대의 감정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런 사람이 만든 호텔이라면 2028년 호텔처럼 상큼하지 않을까 싶다.신 회장은 요즘도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3년 전엔 ‘하얀중립국’이란 대학로 연극에도 출연했다. “인생이란 단막극에서 저 신영균이 누구냐고 물으면 배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운명적인 시나리오를 만난다면 다시 스크린에 서야죠.”하루도 거르지 않고 헬스장에서 5000보를 걷는다는 신 회장의 체력을 보면 빈 말이 아닌 듯했다. 4시간이나 이어진 인터뷰를 마치고도 굳이 주차장까지 나와 배웅하는 신 회장의 모습에서 ‘체력은 국력!(일동제약 아로나민 CF)’을 힘차게 외치던 그의 젊은 시절이 오버랩됐다.- 글 문희철 기자·사진 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