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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미전실’ 시대 이끌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소탈한 성품 속 타고난 승부사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로 계열사별 대표이사 및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체제로 본격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전 계열사를 통틀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부회장 직함을 지닌 권오현 부회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표 취임 후 5년간 스마트폰 1위, 낸드플래시 1위를 지킨 권 부회장의 전문성과 리더십이 포스트 미전실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권 부회장은 미전실 핵심 인재들이 모두 물러난 상황에서 포스트 미전실 시대를 이끌 핵심 리더로 꼽힌다.
삼성이 3월1일자로 미래전략실(미전실)을 공식 해체했다. 미전실의 전신인 삼성물산 비서실이 만들어진 지 58년 만의 일이다. 그룹의 컨트롤 타워였던 미전실 해체는 사실상의 그룹 체제 해체를 의미한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수행하던 모든 업무와 혁신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전실을 진두지휘하던 삼성의 ‘2인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사임했다. 미전실은 컨트롤 타워답게 그룹을 이끄는 핵심 인재들로 구성돼 있었다. 최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 9명이 나란히 퇴진하면서 삼성이 이들 핵심 인재들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 삼성전자 쪽 인사들이 포스트 미전실 시대에 중추적 리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권오현(64)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관심이 모아진다. 최지성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그는 삼성 전 계열사를 통틀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부회장 직함을 지닌 임원이 됐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기도 한 그가 최 부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인자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총수 공백을 최소화하는 임무를 수행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3월2일 권 부회장의 직속 조직으로 글로벌품질혁신실을 신설하고 김종호 삼성중공업 사장을 실장에 위촉했다. 김 사장도 삼성전자 출신이다. 삼성이 권 부회장에게 그만큼 힘을 실어주는 행보로 해석됐다.

권 부회장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사)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석사)와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박사)에서 줄곧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카이스트에 있던 7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80년까지 근무했다. 미국 유학생활은 그의 삶에서 전환점이 됐다.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삼성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에 반도체 부문 연구원으로 입사해 반도체 부문 이사, 메모리본부 상무, 시스템LSI본부 전무와 부사장 등을 차례로 거쳤다. 이어 시스템LSI사업부사장, 반도체사업부 사장, DS사업총괄 부회장을 거쳐 2012년엔 마침내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삼성에 입사한 지 27년 만이었다.

입사 27년 만에 삼성전자 대표 된 입지전적 인물


그의 27년은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했다. 권 부회장은 같은 ‘삼성맨’ 출신인 진대제(65) 전 정보통신부 장관(1985~2000년 삼성전자 근무), 황창규(64) KT 회장(1992~2009년 삼성전자 근무)과 함께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로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킨 주역이라는 평을 듣는다. 92년 64MB짜리 반도체 D램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받았다. 2002년엔 26만 컬러의 액정표시장치(LCD) 구동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밖에 스마트카드칩,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미디어플레이어 통합칩 등의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를 세계 1위로 이끌었다.

그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성공 비결을 ‘네 번의 승부수가 통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첫째, 84년 2세대 생산 라인을 만들면서 경쟁사들과 달리 6인치 반도체 웨이퍼 제조 시설(팹)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던 승부수. 둘째, 88년 스택(Stack) 공법과 트렌치(Trench) 공법 사이에서 스택 공법을 택한 승부수(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 저서에서 스택을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형식’, 트렌치를 ‘지하로 파고들어가는 형식’으로 각각 묘사했다. 스택 공법을 쓰면 트렌치 공법을 쓸 때보다 D램의 집적도가 우수해진다). 셋째, 89년 5세대 생산 라인을 만들면서 세계 최초 8인치 제품의 양산을 결정한 승부수. 넷째, 2001년 낸드플래시 메모리 기술 부문에서 세계 1위가 아니었음에도 경쟁사의 협력 제의를 거절하고 독자 개발에 나선 승부수 등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권 부회장의 주도적 역할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전문성과 함께 리더십도 이건희 회장의 신임을 받을 만큼 일찍이 정평이 났다. 문제가 생기면 주위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기고, 그 과정에서 나온 해법을 합리적으로 결정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인다. 그러면서도 성품이 소탈해 반도체사업부를 이끌 당시 분기별로 직원들과 격의 없는 ‘막걸리 회동’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전자의 확고 부동한 수장이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최고 경영자(CEO)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2015년 기업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149억5400만원으로 재계 1위 연봉을 기록했다. 2013년(67억7300만원)과 2014년(93억 8800만원)에 이어, 해가 갈수록 그의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그의 타고난 승부근성이었다. 권 부회장의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는 그가 200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이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D램에서 1등을 하니까 LCD에 있던 사람들이 ‘나도 1등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노력해 세계 1등을 했다.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그는 늘 자신이 최고의 CEO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타고난 승부근성 보여


▎1.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왼쪽)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권 부회장. / 2. 권오현 부회장은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 육성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누구나 타이거 우즈(골프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즈처럼 되지 못할 바에야 그 시간에 열정을 한 곳에 집중해 1등을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에 집중해야 한다.” 그의 ‘올인’ 아이템은 역시 그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반도체였다. “삼성전자는 2006년 이후 계속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왔다. 반도체 업황이 어렵지만 R&D 투자에 집중하겠다.” 2009년 ‘삼성 글로벌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평소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데서 볼 수 있듯, 그는 무엇보다 효율을 중시한다. 회의가 길어질 때면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다. 이는 그만의 리더십으로 나타났다. 2010년 임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텔을 넘어서려면 열심히 일하기보다 똑똑하게 일해야 한다”며 오래 일하기보다는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함을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흡연을 매우 싫어한다. 흡연이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멀며, 일의 효율적인 진행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 주도하에 지금껏 강력한 사내 금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흡연자는 임원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며, 부서원 하나하나의 흡연 여부가 부서장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일도 잘 된다.’ 권 부회장의 지론이다. 관련해선 일화가 더 있다. “가족들과 평소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가정도 제대로 못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겠느냐.” 그가 임직원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다.

권 부회장이 수장이 된 2012년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그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성공 비결 중 네 번째 승부수로 꼽은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2011년까지 세계 1위였던 일본 도시바를 2012년 처음으로 추월, 지금껏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이 37.1%로 2위 도시바(18.3%)와 두 배 수준의 격차가 났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최초로 개발한 업체다. 권 부회장의 집념이 후발주자 삼성전자를 도시바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이 끊겨도 자료가 보존되는 특성을 지녀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3차원(3D) V-낸드 적층 기술로 고용량의 낸드플래시 제품을 양산하면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가 탄력을 받으면서 삼성전자는 2012년 이후 스마트폰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2년 1분기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맞수’ 애플을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1%, 애플은 12.0%였다. 2014년 4분기 애플 ‘아이폰 6’ 시리즈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점유율이 공동 1위(19.6%)였던 것이 그나마 예외적이었다. 비록 지난해 4분기 들어 2011년 4분기 이후 5년 만에 애플에 간발의 차이로 1위 자리를 내줘야 했지만(애플 17.8%, 삼성전자 17.7%), 삼성전자와 권 부회장은 올 4월 출시되는 ‘갤럭시 S8’로 설욕을 노리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되면서 삼성 내 역할론 대두


▎수원의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에 입주해 있는 모바일연구소.
권 부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에 한층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미전실 해체로 삼성이 계열사별 대표이사 및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체제로 본격 전환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예컨대 2월 24일 삼성전자가 기부금 집행 규정을 대폭 강화해 10억원 이상이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도 이사회 강화 차원으로 해석된다. 종전까지 삼성의 경영이 ‘총수→미전실→계열사’로 이어진 수직적 체제였다면 앞으로는 투명성을 추구하는,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수평적 체제로 바뀔 전망이다. 총수가 전권을 쥐고 기업의 방향성을 정하는 한국 특유의 오너 경영 체제를 전문경영인 체제가 대체해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핵심 리더가 될 인물이 권 부회장이라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30년 넘게 삼성맨으로 성장해 온 권 부회장의 전문성과 리더십이 포스트 미전실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며 “반도체 성공 신화를 써내려온 그의 ‘삼성에서의 마지막 도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권오현 부회장

1952년 10월 15일 출생(만 64세)
서울대 전기공학 학사 / 카이스트 전기공학 석사 /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전기공학 박사 /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입사
2008~2011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
2012년~ 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13년~ 현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장
2016년~ 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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