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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상속포기는 사해행위? 

 

곽종규 KB국민은행 IPS본부 WM투자본부 변호사
최근 대법원 판단이 화제가 됐다. 빚진 사람이 부동산 유증(遺贈·유언으로 재산 일부를 무상증여하는 것) 받기를 포기하는 것은 돈을 갚지 않으려고 재산을 빼돌리는 게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다투는 사례가 여럿이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은 흔하다. 문제는 빌리고 갚지 않아서 생긴다. 갚지 않는 채무자 대다수는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채무자가 상속받을 일이 생긴다면 채권자 입장에선 ‘빚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어떤 채무자는 재산을 상속받지 않겠다고 한다. 채권자 입장에선 돈을 갚지 않으려고 재산을 빼돌려 돈 빌려준 사람의 강제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민법에도 나와 있는 ‘사해행위(詐害行爲)’다.

올해 1월 23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장 모씨가 조모씨 등을 상대로 낸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조씨의 유증 포기행위 취소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민법상 유증받을 자는 유언자 사망 뒤 언제든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고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에 소급해 발생하므로, 채무초과 상태인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받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쟁점은 빚진 사람의 유증 포기가 민법상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사해행위 취소 대상인지 여부였다. 판례가 확정됐지만, 지금도 비슷한 사례로 은행을 찾는 이가 많다. 최근 판례와 상황은 좀 다르지만, 관련 사례 하나를 꺼내봤다.

자산가 A씨 얘기다. 평소 지론이 한 번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죽을 때까지 다시 나가지 않는다는 신조로 사는 이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어릴 적 어렵게 생활한 탓인지 A씨는 자신이 죽으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전부 기부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두 자녀에겐 상속재산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받아 뒀다. 자녀들은 살면서 A씨로부터 특별한 재산상 혜택을 누려본 적도 없다.

A씨는 배우자와 일찍 사별했고, 두 자녀를 홀로 키웠다. 자녀B는 그럭저럭 생황을 꾸려가지만, 자녀C는 사업 실패로 빚을 지고 이혼까지 한 상태다. 그러다 점차 A씨가 노쇠해지자 C는 B와 상의해 아버지를 모신다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주거지로 아예 이사했다. C는 아버지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성심성의껏 아버지 A를 모셨다. A는 모든 재산을 불우한 이웃 돕기에 쓰겠다는 생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평소 지론을 버리고 아들 C에게 아파트 한 채를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 작성 후 수증자인 C에게 유언장을 보여주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잘 돌봐주면 이 유언장대로 유증을 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효도계약서’다. 그러다 A씨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의 전부 또는 일부, 철회 가능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A씨가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고치거나 폐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C에게 아파트를 남긴다는 유언장을 남긴 것이다. 내용이 상충하는 유언장이 두 개인 셈이다. 일단 B는 아버지 평소 지론대로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첫 번째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C는 아파트만은 자신에게 주기로 했기에 두 번째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C의 채권자는 이 소식을 장례식에서 듣고, 상속 등기부터 하라고 독촉했다. 실제 얘기다.

갈등하던 두 형제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우선 시기를 달리하는 유언장의 내용이 다른 경우 어떤 유언장이 효력이 있는지 여부. 두 번째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면 상속포기 각서를 작성한 C가 정말 유언대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여기에 C의 채권자가 물려받은 아파트를 강제집행할 수 있는지, 이럴 경우 그냥 두 번째 유언을 그냥 포기해버리는 게 가능한지도 물었다. 더 나아가 두 유언이 상충되는 바 두 번째 유언이 철회가 가능하다면 첫 번째 유언도 철회해 기존 재산을 상속분할할 수 있는지도 두 형제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단 법적으로 보면 유언 철회는 가능하다.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서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민법 제1108조). 또 유언 후의 생전 행위가 유언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민법 제1109조에 따라 저촉된 부분의 전 유언은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본다(대판1998.6.12.선고97다38510판결). 저촉이란 후의 행위가 전의 유언과 양립될 수 없는 취지로 행해졌음이 명백한 것을 의미하는데 A가 전 재산을 기부하는 내용의 유언을 작성한 후 C에게 아파트를 유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한 행위는 그 범위에 한하여 전의 유언과 양립될 수 없는 취지로 행하여진 것이 명백하기에 아파트를 기부한다는 유언 부분은 일부 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판례에 따르면 두 번째 유언에 따라 C는 아파트를 유증받을 수 있다.

상속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각서도 무효다. 대법원은 “상속개시 전에 한 상속포기약정의 효력은 무효이다(대판1998.7.24.선고98다9021)”라고 밝혔다. 따라서 C는 상속포기 각서를 작성했어도 유증으로든 상속재산 분할을 통해서든 상속받을 수 있다.

C가 유증으로 아파트를 소유한 경우 C의 채권자는 권리행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C가 그 아파트가 채권자 손에 넘어가는 게 싫다면 유증을 포기하면 된다(민법 제1079조). C가 유증을 포기해도 철회했던 첫 번째 유언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두 번째 유언이 존재함으로써 첫 번째 유언은 효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아파트는 상속재산으로 분명하게 남게 됐고, 이에 대한 유언이 없다면 C가 유증을 포기해서 B가 갖거나 둘이 나누면 된다.

C의 채권자 입장에선 두 형제가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를 C가 포기하게 되면 상속재산협의가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위에서 협의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채무초과상태에 있는 채무자인 상속인 C가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면서 유일한 상속재산인 부동산에 관해서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하기로 하였다면 채권자를 해하는 법률행위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상속포기라고 하면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한 상속포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원을 통한 상속포기와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결국 C는 유증을 포기하고 가정법원을 통해 상속포기로 상속인 지위에서 벗어나 B가 온전히 아파트를 취득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통해선 소유권 포기 여부도 결정할 수 있다.

201906호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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