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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50대 부자] 예전만 못한 영향력… ‘新합종연횡’ 노리는 재벌가 

 

한국 재계를 이끌어온 재벌가와 신흥부자들의 접전은 올해도 이어졌다. 3~4대에 이른 국내 재벌들의 과감한 연합 전략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경영 트렌드다.

▎과거 독자적 사업영역 구축으로 경쟁했던 재벌기업들이 과감한 ‘적과의 동침’에 나서고 있다. 수소에너지, 전기차 등 미래 친환경차 배터리 등을 접점으로 사업 협력은 물론 합작법인 설립도 마다하지 않는다.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3~4대 젊은 총수들의 열린 경영이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에서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대통령의 자리 배치 같은 소소한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각국 정상들이 우리 대통령과 약식회담이라도 갖기 위해 열을 올리던 모습은 국민적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2년 연속 G7에 초청된 한국을 두고 사실상 G8 체제가 구축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G7이든 G8이든 세계를 이끄는 리더 국가의 첫째 요건은 경제력이다. 국익이 무엇보다 우선인 국제사회의 냉정한 역학관계 속에선 소위 부자나라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주체인 기업의 역할과 기여가 곧 한 나라의 국부를 결정짓는 요소인 셈이다.

광복 직후 선진국 원조에 의존했던 최빈국이 50여 년 후 해외원조 시혜국으로 변신한 사례는 한국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새롭고 강력해진 코리아파워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방역 선진국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의 성장과 활약이 이런 도약을 가능케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특히 ‘재벌(財閥)’로 상징되는 한국 특유의 기업 구조가 성장을 이뤄낸 바탕이었던 것도 마찬가지 사실이다. 재벌의 사전적 의미는 ‘거대 자본을 가진 동족(同族)으로 이루어진 혈연적 기업체군’이다. 창업주나 총수를 정점으로 모인 혈족들이 거대 자본가 집단을 이뤄 독점적인 사업구조를 영위하며 성장해온 기업집단으로 생각하면 쉽다.

한국적 특수성으로 이해되는 재벌이란 용어는 이미 세계 경제학계에서도 통용된다. 한국전쟁과 박정희 정부 이후 본격화된 산업화는 관(官) 주도의 철저한 계획 경제 아래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의 시너지가 어우러져 이뤄졌다. 낮은 금리, 해외자본 유입 차단을 통한 유치산업 보호 등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산업을 대표하는 자동차, 철강, 조선, 정유화학, 운송 같은 기간산업들이 성장했고, 이들이 오늘날의 재벌로 발전했다. 복잡한 순환출자, 총수에게 집중된 제왕적 경영구조, 이익을 고리로 한 정경유착 등 한국 사회에 재벌이 준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이들의 성장이 곧 한국 경제의 성장이었음은 물론이다.

포브스코리아와 포브스글로벌이 조사한 ‘2021 한국 50대 부자’에서도 한국 재계를 이끄는 재벌그룹의 활약이 이어졌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재벌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05년 조사에서 50명 중 31명으로 과반을 훌쩍 넘겼던 5대 그룹 가문 부자들의 수는, 올해 조사에선 1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1위 부자를 고수해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세상을 떠났고, 이명희 신세계 회장도 50대 부자 타이틀을 잃었다.

이건희 회장 작고 후 더 단단해진 삼성가


반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ICT 계열 신흥부자들과 그 밖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의 약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 재벌가를 제외한 자수성가형 부자는 24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의 차남이지만, 패션 업종에서 스스로 일어선 김창수 F&F 회장까지 포함할 경우 자수성가형 부자와 재벌가 오너들의 수는 정확히 반반으로 갈린다.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점차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삼성가(家)는 재벌그룹의 자존심을 세우는 보루다. 이건희 회장의 작고와 이로 인한 지분 상속은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을 50대 부자 리스트에 재진입시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위에서 2위로 점프하며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에 이어 한국 톱 2 부호에 이름을 올렸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9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11위)도 자산가치와 순위가 큰 폭으로 뛰었다. 범(凡)삼성가를 제외하고도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 삼 남매의 자산가치만 30조원을 넘어선다.

남편과 부친에게 받은 상속 재산이 1년 새 자산가치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기업 자체의 펀더멘털과 이로 인한 주가 상승은 향후 삼성가 오너들의 부를 더욱 확장시킬 전망이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 1분기 65조3885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1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영업이익은 9조3829억원, 당기순이익은 7조1417억원을 거뒀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을 267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49조1000억원대로 전망한다. 탄탄한 실적은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6월 16일 종가 기준 8만1800원을 기록한 삼성전자 주가는 1년 전인 지난해 8월 16일의 5만2100원 대비 57% 넘게 뛰어올랐다. 한국 증시 시총 1위 기업의 주가가 불과 1년 사이 50% 이상 급등한 것이다.

‘적과의 동침’ 주저하지 않는 젊은 오너들


삼성가를 제외한 재벌가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중국 시장 부진과 팬데믹 여파까지 몰아친 아모레퍼시픽의 부진은 서경배 회장의 순위를 지난해 9위에서 10위로 밀어냈다. 서 회장은 2020년 조사에서도 2019년 6위에서 3계단 미끄러진 바 있다. 올해 조사에선 5조3428억원의 자산가치로 톱 10에 턱걸이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지난해 10월,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이어 그룹 총수(회장)가 된 정의선 회장도 2020년 11위에서 올해 12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지난해 7위였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조사에선 3조7845억원의 자산으로 14위에 그치며 아예 톱 10 밖으로 밀려났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지난해 13위에서 15위로 2계단 떨어졌다. 다만 최근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나간 구본준 LX홀딩스 회장(39위→26위), 구본식 LT그룹 회장(28위→25위) 등은 자산가치가 크게 늘며 가파른 순위 상승세를 보였다.

그동안 독점적 시장 지위를 누렸던 재벌그룹의 줄어든 영향력은 새로운 형태의 ‘합종연횡’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사업 영역이 겹칠 경우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해 처절하게 경쟁했던 재벌들이 이제는 M&A와 협력으로 생존의 틀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창업주나 2대에서 3대, 길게는 4대까지 넘어오면서 제왕적 경영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고, ICT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과 신사업 강화를 위해선 과거처럼 닫힌 경영만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업과 업종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는 트렌드는 막대한 자본과 글로벌 기술력을 갖춘 국내 대기업들의 연합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 재벌기업의 협력이 전경련 등 재계 공식창구를 통해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사업적 시너지를 위해 개별 기업 간 ‘적과의 동침’이 자연스러워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7월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인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만남은 전기자동차 등 현대차의 미래차 시스템 반도체에 삼성전자의 전략적 협약을 예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정 회장은 삼성전자 외에도 자동차 배터리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SK그룹과도 손을 잡았다. 현대기아차와 SK이노베이션은 하이브리드전기차 배터리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이 역시 지난해 7월 정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만남 이후 이뤄진 후속 작업이다.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양사가 미래 핵심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 손을 잡은 셈이어서, 그간의 재벌기업 간 비즈니스 협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다.

현대차는 자동차 배터리 글로벌 1위인 LG화학(LG에너지솔루션)과도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에 있는 LG화학 오창공장을 찾아 구광모 회장과 첫 단독 회동을 가졌다. 전기차 등 미래차 배터리 분야 협력을 논의한 두 사람은 현대차와 LG의 합작법인 설립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협력을 넘어 지분 출자를 통한 공동사업 진행으로까지 협력의 틀을 넓힌 셈이다. 업계에선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를 매개로 현대차와 삼성, LG, SK 등 4대 그룹의 협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스기사] LX홀딩스로 4년 만에 컴백한 구본준 회장


구본준 회장의 LX홀딩스 설립은 장자 상속 전통이 뿌리 깊게 남은 한국 재벌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 구 회장은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2대째인 고 구자경 LG 회장의 삼남이다.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이 2018년 세상을 떠나자,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 조카인 구광모 회장 시대가 시작되면서 구본준 회장은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형인 구본무 회장과 함께 LG디스플레이의 전성기를 열었고, 위기에 빠진 LG전자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장자 상속이 이뤄지면서 용퇴를 선언했다.

그간 LG그룹은 그룹 차원의 경영승계가 이뤄질 때마다 LS그룹, E1, 희성그룹, LT그룹 등으로 계열분리가 이뤄져왔다. 구본준 회장 역시 지난 3월 신설 지주회사 LX홀딩스를 설립하며 분할 계획을 승인했다. 경영에서 물러난 뒤 4년 만에 계열분리와 경영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LX홀딩스 아래로는 LG상사,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 등 4개 자회사가 주력사업을 맡게 된다. 각 계열사 사명 앞에 붙은 LG 타이틀도 향후 LX로 변경될 예정이다. 자산 규모 7조원대인 또 다른 대기업 그룹의 탄생이다. 이번 50대 부자 조사에서도 구본준 회장은 자산가치 1조780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순위가 13계단이나 뛰어오른 26위에 랭크됐다.

LG와 LX홀딩스의 분리는 인적분할로 이뤄졌다. 기존 LG 주주의 지분율을 그대로 신설 지주사에 적용하는 구조다. 현재 LX홀딩스 지분은 구본준 회장이 7.57%, 구광모 회장이 15.65%를 갖고 있다. 향후 구본준 회장은 지분 스와프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높일 전망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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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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