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판 ‘부(富)의 지도’는 코로나19 사태를 돌파해낸 부의 확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50대 부자 대부분이 지난해 조사와 비교해 자산가치가 올랐다. 자산가치가 1조원에 미치지 못했던 부자가 7명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 조사에선 50명 전원이 1조원대 자산을 기록했다. ‘1조 클럽’의 부활이다.
대한민국 부자들의 자산 증가세가 코로나19 팬데믹도 뚫었다. 올해 50대 부자 대부분의 자산가치가 1년 전과 비교해 플러스로 돌아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차트에 새로 진입한 뉴페이스 2명과 재입성에 성공한 3명,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웅 GP클럽 대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전년 대비 자산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한국 부호들의 이 같은 자산가치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봉쇄와 셧다운에 신음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이는 한국의 방역 상황과 무관치 않다. 미국과 유럽,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지역 간 이동 자체를 아예 틀어막거나 강제 영업중지까지 단행하며 팬데믹에 고전했다. 반면 한국은 철저한 감염고리 추적 관리와 ICT 기술을 활용한 방역 조치, 마스크 착용 등 전 국민적 단결, 선진화된 의료 인프라 등이 뒷받침됐다. 그 결과 국내는 물론 해외 입국자를 포함해 일체의 봉쇄조치나 강제 영업중지 같은 극단적 셧다운이 없이도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손꼽히게 됐다.실제로 한국은행이 6월 9일 발표한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7%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4월 27일 공개된 속보치(1.6%)보다 0.1%포인트(p) 높아진 결과다. 한국은행은 분기별 성장률이 0.6% 후반대를 유지하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4.0%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의 경제 상황을 완전히 회복한 수준이다.
팬데믹 이전 수준 회복한 한국 경제‘동학개미’로 상징되는 국내 증시 활황은 부자들의 자산가치 증대를 불러온 핵심 요인이다. 올 초 지수 2944.45로 개장한 코스피시장은 6월 16일 기준 3278.68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초 대비 지수 상승률이 11.3%에 달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시사 등으로 뉴욕과 선진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나온 성과라 더욱 의미 있는 결과다.비상장사의 지분가치를 집계하는 요소 중 하나인 한국거래소의 업종별 주가순자산비율(PBR) 상승도 부자들의 자산 증대에 한몫했다. 지난해 0.62였던 코스피 건설부문 PBR이 올해 0.93으로 50%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 실적, 즉 펀더멘털이 강화되면서 자기자본이 전년 대비 증가 추세를 보인 것도 비상장사 지분가치 상승에 기여했다.올해 50대 부자 조사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삼성 家가 불러온 변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작고가 불러온 파장이다. 매년 한국 최고 부자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별세했다. 2020년 조사 기준 20조원이 넘었던 막대한 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 남매와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에게 상속됐다. 지난해 8조원대였던 이 부회장의 자산도 올해 조사에서 13조8012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순위도 4위에서 2위로 상승했다.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이사장의 자산도 급증했다. 1년 전 2조260억원이었던 이 사장의 자산가치는 올해 조사에서 5조4541억원으로 170% 가까이 점프했다. 지난해 16위였던 전체 순위도 1년 만에 9위로 뛰어오르며 톱 10에 진입했다. 이 이사장 역시 같은 기간 1조8090억원에서 4조8976억원으로, 순위도 16위에서 11위로 5계단 상승했다. 홍 전 관장도 7조9030억원으로 단번에 6위에 랭크돼 차트에 재진입하면서 자존심을 세웠다. 삼 남매와 홍 전 관장을 합친 삼성가 전체의 자산가치만 32조원이 넘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이아몬드수저’의 위력이다.이건희 회장의 작고로 한국 최고 부자 타이틀은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에게 돌아갔다. 서 명예 회장은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내놓으며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이끌어온 리더다. 지난해 12월 회장 자리에서 전격 용퇴하면서 경영 세습이 일반화된 국내 재벌가와는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서 명예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셀트리온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지주사 격인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을 95.5% 이상을 보유해 셀트리온을 지배하는 구조다. 서 명예회장은 아들인 서진석 셀트리온 이사회 의장과 서준석 셀트리온 이사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두 아들의 셀트리온 보유 지분은 제로(0)다.50대 부자 순위에서 만년 4위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조사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S 등 19조원대에 달하는 상속분을 유족 네 명이 나눠 받은 결과다. 정확한 상속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관심이 몰렸던 삼성전자 지분은 법령에 따라 홍 전 관장이 3분의 1을, 나머지 3분의 2를 삼 남매가 똑같은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과 삼성SDS 지분도 마찬가지다. 다만 삼성생명 지분은 이 부회장이 절반을 상속받았고, 나머지를 두 딸이 물려받았다. 이로써 이 부회장은 단숨에 삼성생명 지분 10.4%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됐다. 상속 전까지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 불과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도 약 18% 보유 중인 최대주주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한층 더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삼성家 부자들의 화려한 귀환전통 재벌가와 자수성가형 신흥부자의 접전이 치열한 가운데, 올해 톱 10 차트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다. 2020년 조사에서 자산가치 1조2060억원으로 31위에 올랐던 김 의장은 올 들어 자산 7조1238억원으로 당당히 7위에 랭크되며 전년 대비 24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전체 50명 부자 중 가장 큰 상승 폭이다. 톱 10 내 순위 변동이 크지 않음을 감안하면 돋보이는 상승세다.김 의장의 자산가치 급등은 지난 3월 쿠팡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덕분이다. 지난 6월 15일 기준 쿠팡의 시가총액은 75조원을 넘어섰다. 한 때 100조원이 넘었던 쿠팡 시총을 능가하는 기업은 국내 증시(코스피)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밖에 없다. 시총 3, 4위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쿠팡보다 아래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창업자가 이끄는 비전펀드가 지분 33.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 의장은 비전펀드, 닐 메타 그린옥스캐피털 창업주에 이어 10.2% 지분을 보유한 3대 주주다. 다만 차등의결권이 보장된 뉴욕증시 규정상 김 의장이 확보한 의결권은 7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올해 조사에선 차트 상단에 이름을 올린 톱 10 순위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재벌가 5명과 자수성가형 부자 5명으로 나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재벌 부호의 변동폭이 컸다. 김범석 의장의 약진으로 신흥부자들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의 등장으로 재벌가의 저력이 이어졌다. 다만 지난해 7위였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계단 미끄러진 14위에 그치며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도 지난해 9위에서 올해 10위로 밀려 톱 10 턱걸이에 성공했다.
▎김창수 F&F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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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를 제외한 재벌가의 순위 하락은 올해 조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절대적인 자산가치는 지난해보다 증가했지만 조사 대상자 전체 부의 크기가 커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재벌가의 자산가치는 소폭 늘어난 탓이다. 서경배 회장,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위에서 12위로 밀렸고, 같은 기간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13위에서 15위로 2계단 떨어졌다. 이 밖에도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20위→27위), 신창재 교보생명회장(22위→28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29위→30위), 이재현 CJ그룹 회장(27위→37위),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21위→39위), 신동주 에스디제이 회장(41위→46위) 등이 지난해 대비 순위에서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지난해 언택트(untact) 트렌드를 이끌며 선전했던 ICT 계열 신흥부자들이 올해 조사에서 양극화 경향을 드러낸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4위)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CVO(비전제시최고책임자. 5위)가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김범석 의장이 상장 수혜를 톡톡히 본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ICT 부자들의 순위가 하락했다.지난해 조사에서 자산가치 2조502억원으로 14위에 올랐던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올 들어 자산가치가 2조5601억으로 올랐다. 하지만 순위는 19위에 그치며 5계단 하락했다. 프로야구 팬들에게 ‘택진이형’으로 불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지난해 자산 3조150억원으로 10위에 올랐지만, 올해 조사에선 2조8940억원에 그쳤다. 전체 조사 대상 50명 중 자산가치가 전년 대비 쪼그라든 경우는 김 대표와 김정웅 GP클럽 대표뿐이다. 올 6월 16일 종가 기준 85만원인 엔씨소프트 주가는 1년 전인 2020년 6월 16일 기록한 87만5000원 대비 2.9% 넘게 빠졌다. 한때 100만원을 넘어서며 게임업계 ‘황제주’로 입지를 탄탄히 다졌던 엔씨소프트는 올 1분기 들어 몇몇 악재를 맞으며 주가 상승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신작 ‘트릭스터M’ 출시 연기, ‘리니지M’ 롤백(엡데이트 이전 시점으로 되돌리기)으로 인한 불매운동과 일본 매출 부진 등이 이어졌다.이 밖에도 방준혁 넷마블 의장(15위→18위), 이준호 NHN 회장(19위→24위),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34위→48위) 등도 순위가 하락하며 쓴맛을 봤다.
[박스기사] 방시혁, BTS 타고 ‘슈퍼리치’ 대열 합류케이팝(K-Pop)은 한류를 상징하는 콘텐트다. 1세대 한류 붐은 이수만·양현석·박진영 삼인방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제국 SM, YG, JYP가 주도했다. 최근 양상은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TV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 콘텐트 플랫폼을 완전히 대체하면서다. 전 세계 음악시장을 양분한 미국과 유럽에선 디지털음원 시장이 비교적 일찍 자리 잡은 후에도 음반 출시와 공연(투어)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가 여전히 음악 유통의 중심을 이뤘다. 하지만 음악 시장은 더는 국경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완전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구현해가고 있다. 1세대 아시아 시장 중심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유럽을 직접 겨냥한 케이팝의 새로운 비상 역시 이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기반이 됐다. 그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이 바로 방탄소년단(BTS)이다.BTS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1997년 박진영의 JYP 사단에 합류했고,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세워 독립했다. 2013년 첫 앨범을 발표한 BTS는 방 의장을 1세대 엔터기업 삼인방의 위상을 넘게 해준 발판이 됐다. 1집, 2집의 국내 성공에 이어 2017년 선보인 ‘LOVE YOURSELF’ 시리즈는 빌보드 핫100 차트 진입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성공시대를 열어주었다.방 의장이 레이블 프로듀서의 명성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CEO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건 지난해 10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다. 올 4월에는 자회사인 빅히트아메리카가 미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이타카홀딩스(Ithaca Holdings)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밝혀 한국은 물론 글로벌 엔터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로써 하이브는 BTS를 비롯해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데미 로바토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을 거느린 제국이 됐다. 하이브의 이타카 인수 규모는 10억5000만 달러로 약 1조원이 넘는다. 국내 엔터업계 M&A 역사상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이 해외 메이저 레이블을 인수한 첫 사례다.지난 5월 21일 발표된 BTS의 새 노래 ‘버터(Butter)’ 역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3주째 1위를 지키며 또 한 번 날아올랐다. 방 의장이 지분 35.5%를 보유한 하이브의 주가도 6월 16일 기준 29만2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연초 15만8000원 대비 84.8% 급등했다. 6월 16일 주가 기준 방 의장의 지분가치는 3조8400억원에 달한다.
※ 어떻게 조사했나보유 주식의 지분가액을 집계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 주식은 2021년 4월 2일 주가와 주식 수를 곱해 산정했다. 비상장 지분의 가치는 지분율, 연결재무제표에 나온 기업별 총자본금, 4월 2일 기준 업종별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곱해 산정했다. 이후 비상장 기업임을 감안해 10% 가치를 감산했다. 단, 업계 평균을 내기 어려운 기업은 동일 업종 상장회사 3개의 PBR 평균치를 곱했다. 총자본금은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했고, 배당금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치를 합산했다. 부동산과 그 외 금융자산은 반영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보유 주식 매매를 통한 현금화로 큰 차익을 얻은 경우 이를 더했다. 지난해부터 조사 대상자의 배우자나 25세 미만 자녀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 가치는 합산하지 않았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