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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포 사업가의 고민 

 

국내외를 오가는 동포 사업가가 꽤 있다. 하지만 두 나라를 오가다 보니 가정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도 났으리라. 감정이야 차치하더라도 자칫 이혼이라도 하면 자식들까지 재산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해외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재외동포가 많다. 하지만 가족구조가 좀 복잡해졌고, 재산관계도 꼬이는 경우가 있다. 국내외에 재산이 흩어져 있다 보니 관리도 쉽지 않다. 최근 한 사례가 떠오른다.

30년 전 당시 한국에서는 낯선 나라였던 아르헨티나에서 홀로 사업을 시작한 김길수씨(가명·58). 이제는 연간 300억원대의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와 한국을 오가는 글로벌 기업의 수장이 됐다. 병역 의무를 마치자마자 젊은 나이에 무작정 아르헨티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가 30년 만에 거둔 성과다.

당시 한국 동포가 드물었던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은 꽤 고단했지만 지금의 부인이 큰 힘이 돼줬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 부인의 권유로 현지에서 입양한 자녀도 셋이나 된다. 이제 자식들은 미국, 아르헨티나, 한국 등에 독립해 살고 있다.

김씨는 그간 회사도 키웠고 재산도 꽤 모았다. 하지만 그도 최근 코로나19 상황을 비껴갈 수 없었다. 한국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돌연 아내가 친정에 가야겠다며 아르헨티나로 훌쩍 떠나버렸다. 한국 사업체 때문에 따라갈 수 없어 고민하던 찰나에 불현듯 이혼 통보를 받았다. 부부문제는 자식들 문제로 이어져 편이 갈렸다. 아내를 설득해 이혼을 잠시 미루기는 했으나 증여나 상속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미성년 자녀를 위해 유언대용신탁

김씨는 먼저 자신이 보유 중인 재산을 점검해봤다. 거주 중인 아파트 1채와 모아둔 은행 예금, 경영하는 기업의 법인 주식이 있다. 세무자문을 통해 증여와 상속 계획을 세웠다.

마침 주식 중 일부는 차명주식으로 보유 중이므로 이번 기회에 정리하기로 했다. 김씨는 차명 지분에 따른 리스크를 따져봤다. 차명주주가 사망, 파산, 이혼 등 여러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차명지분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차명주식 환원 방안에 대해 세무사와 협의했고 중장기적으로 주식가치 변동에 따른 증여와 양도 등 다양한 방법을 논의했다. 또 갑작스런 유고에 대비하는 리스크를 신탁으로도 보완할 수 있다는 조언도 들었다.

2011년 7월 신탁법 제59조에 도입된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차명주주가 신탁계약의 위탁자가 되고 금융기관이 수탁자가 됨에 따라, 위탁자가 사망하게 되면 다른 상속인들의 동의 없이 신탁계약에서 지정한 사후수익자에게 바로 주식을 이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신탁에 맡긴 재산은 계약 후 1년이 경과할 경우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2020년 판례가 있어 더욱 효과적으로 신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상속이나 노후관리 또는 미성년 자녀들을 위해서 활용되는 신탁이 또 하나의 옵션으로 활용된 사례다. 차명 주식 보유자의 리스크에 대비하고 시간을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중장기적 절세 방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또 김씨가 보유 중인 회사 주식은 현재 가치가 저평가되어 일부를 증여하기로 했다. 10년 단위로 증여가 이뤄진다면 상속세도 절약된다. 증여 후 남은 주식과 아파트, 금전은 유언장과 신탁 방식 중 신탁을 통해 상속설계를 해두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상속인이 되는 배우자와 해외시민권자인 자녀들이 모두 국내에 모여 상속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상속과 자산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영속성 있는 금융기관의 플랫폼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유언장의 경우 한국에 있는 예금 등 금전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이 공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해외에 있는 상속인들과 국내에 있는 상속인들의 동의절차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탁의 사후수익자로 지금까지 증여에서 제외된 자녀 2명만 지정해 균등분배하기로 했다. 배우자는 현지에서 거주하는 집과 현지법인의 주식을 보유 중이므로 이미 충분히 증여가 이뤄진 셈이다.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입양 자녀에게는 현지에서 집과 교육비를 충분히 지원했다. 돌이켜보니 배우자와 입양한 자녀에게만 지원했는데 정작 본인의 자녀들에게는 지원이 부족했다고 느낀 김씨는 이 기회에 자신의 뜻을 정하게 되었다.

김씨는 지금껏 가족을 위해 노력해왔던 자신의 역할과 가족과의 관계를 돌이켜보며 뜻을 분명히 정할 수 있었다. 이혼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재산을 곧바로 증여할 생각으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나이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조정하게 되었다. 김씨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기 위한 방안으로 일부 증여와 신탁계약을 요청했고 실행에 옮겼다. 계약을 마친 김씨는 본인이 평생 일궈온 재산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설정할 수 있어 고민을 한시름 덜게 되었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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