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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수 KB국민은행 부행장 

테크핀에 맞서는 전통은행의 디지털전략 

신윤애 기자
디지털을 향한 은행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빅테크, 테크핀 회사의 등장으로 촉발된 플랫폼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부터 대대적인 디지털전환에 나선 KB국민은행이 디지털 주도권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사진:KB국민은행
“대형 플랫폼 기업이 은행들의 최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냉정한 현실에서 전기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듯, 디지털은 4차 산업혁명의 새 물결이며 변화는 선택이 아닌 우리의 숙명입니다.”

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당시 KB국민은행장)은 지난 2018년 11월 열린 창립 17주년 기념식에서 ‘KB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 선포식’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혁신 조직으로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DT를 위해 2025년까지 총 2조원 규모의 디지털 관련 투자를 진행하고 디지털 인재 4000명을 양성한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23년. 한 해 전략을 발표하는 시무식에서도 어김없이 ‘플랫폼’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고객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스타뱅킹, 리브넥스트, KB월렛, KB부동산 등 KB플랫폼이 가진 서비스 역량을 계속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더하기 위한 전략으로 디지털 중심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데이터와 AI 등을 다루던 테크그룹의 금융AI센터를 독립시켰고, 여기에 영업마케팅 부문에 있던 마이데이터본부를 통합했다. 영업마케팅 부문도 디지털 전담 부서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애자일(agile)’ 조직을 구현했다. 곳곳에 IT 조직을 포진시켜 유기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디지털 기술로 데이터분석 역량을 고도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KB국민은행뿐 아니라 소위 ‘금융공룡’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은 지난 몇 년간 디지털전환에 사활을 걸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기술인재를 확보하고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다. 또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계열사와 ‘슈퍼앱’ 만들기에 도전하고 헬스케어, 푸드, 알뜰폰 등 기존 사업과 시너지효과가 날 만한 비금융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이 과정에서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던 시중은행의 오랜 관습을 깨뜨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순혈주의’에서 과감히 벗어나 비은행권 출신의 디지털 인재를 공들여 영입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KB국민은행도 디지털전환을 구호로 내걸면서 2019년 외부에서 비은행권 출신의 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임원진으로 발탁하는 첫 시도를 했다. 윤진수 KB국민은행 부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빅데이터센터장, 삼성SDS에서 클라우드추진팀장, 데이터분석사업담당 등 디지털전환 업무를 주도했던 베테랑 디지털 전문가다. 2018년 3월 현대카드로 자리를 옮기며 금융권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이후 2019년 4월 KB국민은행에 합류해 DT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중이다.

“KB국민은행에 입사할 당시 데이터전략본부를 맡았습니다. 데이터전략본부에 있던 AI 부분을 키워서 금융AI센터를 만들었고, 올해 초 조직개편으로 데이터AI 본부로 독립했습니다. 제가 그룹장을 맡고 있는 테크그룹은 KB금융그룹의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KB국민은행의 디지털전환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조직이에요. 금융사에 적용되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과 운영 역량을 갖추고 있고 클라우드로 신속하게 전환하도록 ‘KB One Cloud’를 구축, 운영합니다. 클라우드를 그룹 내에 확산하는 것도 우리 조직의 역할입니다.”

지난 4월 11일 KB국민은행 서여의도영업부지점에서 만난 윤진수 부행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가 KB국민은행에 합류한 지 4년이 흐른 지금 기술부서는 양적, 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윤 부행장은 “데이터전략본부로 입사했는데 당시 AI팀은 3명짜리 조직이었다”며 “현재 그 조직은 60명이 넘는 금융AI센터로 성장했고, ICT 인력으로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2019년 대비 거의 2배 수준으로 인력 규모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윤 부행장에게 지난 4년간 이어온 디지털 여정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2019년 KB국민은행에 합류했다.

처음엔 KB국민은행이 디지털전환을 위해서 꼭 가져야 할 핵심 기술과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내재화할 영역, 외부와 협력이 필요한 영역으로 구분했다. 내재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그 밖의 영역은 뛰어난 업체를 찾아 협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 네이버 등 IT 업계에서 자연어처리 엔진, 데이터 엔지니어링, 클라우드, OCR, 블록체인, Open API 영역을 비롯한 각 분야의 핵심 인력들을 영입했다. 테크혁신본부를 맡고 있는 박기은 전무를 2년 전 CTO로 영입한 게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크다. 이 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업무나 서비스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Quick-Win’ 과제를 만들어 조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술의 효과와 필요성을 입증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2019년에 비하면 확실히 데이터 활용 능력이 좋아졌다. 지난 몇 년간은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자동화에 주력해왔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을 세분화해서 이전에 진행했던 마케팅 결과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성공률을 높이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 시스템이다. 더불어 대부분이 텍스트 데이터인 비정형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초기부터 금융언어를 잘 이해하는 언어모델인 ‘KB-ALBERT’,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KBSTA’를 자체 개발했다. 은행 내부의 각종 서비스(검색, 수집, 분류, 분석 등)에 적용한다.

금융언어를 학습한 금융권 최초의 언어모델 아닌가.

맞다. KB-ALBERT는 연구 목적을 위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했다. 금융언어에 특화돼 있어서 금융 텍스트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경우 다른 언어모델에 비해서 좋은 성능을 낸다. 지난해부터는 금융특화 AI-OCR을 플랫폼 형태로 제공해 은행과 계열사에 적용 범위를 넓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아직 개인화 또는 초개인화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으로 올라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CJM(Customer Journey Map)에서 사용자의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거나, Micro-Segment를 적용해 조금 더 세분화된 타깃 고객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금융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특히 고객이 금융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시점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금융 활동이 비금융 활동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어서 고객이 남기는 흔적(데이터)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외부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와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얻게 되는 데이터 등 다양한 소스의 데이터를 결합해서 고객의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언어모델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 뭔가.


▎ 사진:KB국민은행
KB-STA는 처음 KB국민은행에 왔을 때부터 생각한 전략이었다. KB국민은행이 가지고 있는 내부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1억 페이지가 넘는 양질의 정보(텍스트 형태)가 있었다. 다만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찾기가 어렵고, 내용이 방대해서 요약하거나 요점만 확인해볼 수도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언어를 잘 이해하는 자연어처리 플랫폼’이 필요했다. 초거대 모델이 없는 시기이기도 했고 최신 AI 기술로 금융에 특화된 자연어처리 엔진을 제공하는 곳이 아예 없었다. 은행 내에 있는 금융 데이터를 모으고 오픈소스인 구글의 BERT 기술을 활용해 언어모델과 언어처리 시스템을 직접 만들었다. KB-STA는 사내의 지식인 검색과 유사한 One-KB AI 검색, 금리 및 환율 컨센서스, 콜봇과 챗봇, AI금융비서와 같은 서비스에서 사용된다. 이 외에도 이미지에 포함된 문자를 읽어내고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게 해주는 ‘AI OCR’을 개발했다.

은행이 그리는 DT는 어떤 모습인가.

금융 규제를 준수하며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테크그룹의 역할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클라우드 기술의 확산과 BaaS(Banking as a Service)로의 방향성이 디지털전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BaaS는 은행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제3자 서비스 제공업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업체가 직접 은행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도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여 자체 서비스를 확장하고 개발할 수 있다. 다만 퍼블릭 클라우드의 도입에 국한하지 않고 클라우드 환경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 즉 Cloud Native 기술로 불리는 최신 기술을 도입해 실제 플랫폼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클라우드 고도화를 테크그룹의 과제로 꼽았다.

2021년 상반기에 KB One Cloud 전략을 선언하고 그해 10월에 프라이빗과 퍼블릭 클라우드를 포함하는 하이브리드, 멀티 클라우드인 ‘KB One Cloud’를 구축했다. 이후에는 KB One Cloud 위에 KB금융그룹의 서비스를 올리고, 클라우드 환경을 개선했다. 클라우드 기술을 확산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22년에 KB One Cloud 전략을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기 3년간 다양한 퍼블릭 및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사용해봤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합한 클라우드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클라우드를 일부 서비스에 적용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클라우드 환경을 구축하고 전환 전략을 실제로 적용하는 사례는 우리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이 과정을 AWS와 함께하고 있다.

AWS와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는.

AWS는 클라우드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문제가 생길 때 기술지원을 해주는 체계와 인력이 최고 수준이다. 마이데이터와 같은 중요한 서비스 시스템이 AWS 위에서 개발, 운영되고 있다. 매년 12월 초에 개최되는 re:Invent 행사에도 우리 개발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최신 클라우드 기술과 흐름을 배우도록 한다.

지난 4년간 디지털전환 과정을 지휘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클라우드의 기술과 운영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인력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외부의 지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부에 클라우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충분한 개발자가 없으면 클라우드에 적합한 아키텍처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프라이빗클라우드를 직접 구축 운영하는 것은 퍼블릭 클라우드에 비해 어려운 일이어서 내부 클라우드 인력의 역량, 그중에서도 개발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개발 조직이 쉽게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에 샌드박스 형태로 개발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전환으로 비용 부담은 늘지만 당장의 성과나 시너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트너(Gartner)에 클라우드 적용의 실패 사례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의욕적으로 클라우드 전환을 시도했다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 진행 속도를 조절한 사례를 전해 들었다. 이들에겐 크게 네 가지 특징과 개선점이 보였다고 한다. 첫째는 클라우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매월 청구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어 효율적인 사용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둘째는 개발자가 미숙하면 클라우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기에 충분한 기술지원이 필요하다. 셋째는 개발 환경, 협업, 애자일이 함께 진행돼야 제대로 된 클라우드 전이가 이뤄진다. 마지막은 프라이빗 클라우드의 경우엔 퍼블릭과 유사한 사용 경험과 기술을 제공하기 위해 내부기술 인력의 확보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디지털전환은 결국 클라우드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개선점들을 숙지하고 적용한다면 좋은 결과와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테크핀 기업들의 행보가 위협적인데, 정통 금융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탄탄한 지점망이 아닐까. 온라인 거래량이 오프라인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지만 오프라인을 통한 고객과의 경험은 디지털이 쉽게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연장선상에서 WM 오프라인 지점을 강화하고 있다. 또 슈퍼앱을 통한 통합 금융 서비스도 기존 테크핀 기업들에 비해서 기존 은행이 장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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