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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진 차지비 대표 

전기차 충전의 토털 솔루션 

장진원 기자
전기차가 처음 보급될 때만 해도 가장 큰 리스크로 꼽혔던 건 충전 인프라 확충 이슈였다. 이제 전기차 충전업은 차량의 보급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공급망을 늘리며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GS그룹 산하의 에너지부문 지주사인 GS에너지는 전기차 충전 서비스 기업 차지비(CHARGEV)를 전격 인수했다. 정확한 인수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투자 업계에선 대략 500억원 수준에서 M&A가 이뤄졌다는 예상이 나왔다. GS에너지가 차지비의 기업가치를 1000억원 이상으로 평가했다는 뜻으로, 국내 전기차 충전 서비스 업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딜이었다.

이에 앞서 2020년, 차지비는 KT의 전기차 충전사업인 KT차징메이트의 서비스 운영권을 인수한 바 있다. 당시 M&A로 이미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 1위로 올라섰던 차지비는 GS에너지 산하의 충전 서비스 GS커넥트와 연합해 명실상부한 1등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차지비는 전국에 1만5000개에 이르는 자체 전기차 충전기를 운영 중이다.

차지비는 지난 2012년 포스코ICT 내 EVC(전기차 충전) 사업부로 출발했다. 2013년 BMW코리아를 시작으로 2015년 현대자동차, 2016년 한국GM, 2018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등 다양한 완성차 업체와 전기차 충전기 설치 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재 차지비는 BMW, 현대차, 벤츠, 볼보, GM, 폴스타 등 다양한 전기차 브랜드의 전용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하며 국내 충전 서비스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차지비를 이끄는 주형진 대표 역시 포스코ICT 출신이다.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한 주 대표는 포스코ICT에서 그룹 내 유무선 통합 프로젝트를 이끌던 ICT 전문가였다. 그때까지 전기차 충전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그의 이력이 방향을 튼 건 업무차 제주도를 찾은 2012년 무렵부터다.

“스마트그리드 시범사업의 일부였던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알아보기 위해 제주도로 출장을 갔습니다. 일출봉 근처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를 찾았는데, 설치된 6기의 서비스업체가 모두 제각각인 거예요. 내가 가진 선불카드를 어떤 충전기에 써야 할지도 알 수 없더군요. 전기차 충전이란 게 단순히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어요. 차주와 충전소를 ‘연결’하는, 즉 물리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ICT 사업이라는 게 제가 깨달은 충전업의 본질이었습니다.”

ICT 전문가가 충전에 눈 돌린 까닭


제조사별로, 서비스업체별로 각기 다른 충전기와 결제 방식을 제대로 연결하고 통합하면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문제는 시장 규모였다. 2012년만 해도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는 총 4000여 대에 불과했다.

“충전 인프라 투자에 가장 진심인 곳이 어디였을까요? 당장 차를 팔아야 하는 완성차 업체죠. 마침 i3 모델을 처음 내놓았던 BMW를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내연기관 차 중심이었던 당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판매에 나서면서 겪은 페인포인트는 바로 영업이었다. 주 대표도 그 지점을 공략했다. 영업사원은 기존처럼 차량 판매에만 집중하고, 충전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차지비가 맡아 해결하겠다는 제안이었다. 포스코ICT에는 아예 BMW와의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사업화를 설득했다. 완벽한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신사업 제안이었다.

“BMW가 주형진이라는 개인을 보고 협업에 나선 건 물론 아니었어요. 포스코라는 국민 기업의 브랜딩을 이용하자 생각했죠. 포스코는 중립성, 신뢰의 상징 같은 기업이니까요. 회사(포스코ICT)에는 실제 사업화 가능성을 보여주며 설득했어요. BMW와 맺은 계약이 그 근거였죠.”

이후 전기차 충전이라는 신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BMW와 이마트, 포스코 ICT가 삼자 MOU를 맺었다. BMW가 이마트 주차장에 충전소를 설치하면, 포스코ICT가 이를 독점적으로 관리·운영하는 구조다. 그렇게 전국 80개 이마트 매장에 총 120대의 충전기가 설치됐다. BMW는 전기차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충전 인프라를 확대했고, 포스코ICT는 관리운영을 통해 수익을 냈다. 이마트는 전기차 소유 고객 유입은 물론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쌓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상적인 구조였다.

“한 번 레퍼런스를 쌓으니 그다음부턴 마치 ‘도장깨기’ 하듯 완성차 업체를 찾을 수 있었어요. 곧바로 현대차와 협업해 충전기 120대를 설치했죠. GM, 재규어 랜드로버, 닛산, 벤츠, 볼보에 이어 최근엔 폴스타와 멤버십 서비스를 맺었습니다.”

전기차를 만든 완성차 업체는 과거 내연기관 차량처럼 차량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주력한다. 차량이 고객에게 인도된 이후부터 충전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는 차지비가 전담한다. 사업 초기부터 이어온 이 같은 사업구조는 차지비 B2B 영업의 핵심이다. 처음 제주도에서 겪은 충전 서비스의 불편함은 각기 다른 서비스업체가 충전 인프라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차지비는 2016년부터 국내에 설치된 10만 기 이상의 충전기를 대상으로 ‘e-로밍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차지비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은 다른 충전 서비스업체의 충전기를 별도 가입 절차나 카드 발급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주 대표는 “차지비 회원은 아파트 등에 설치된 충전기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전체 공용충전기의 92%에서 충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환경부나 한전이 관리하는 충전소는 요금도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드물게 사업 초기부터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는 B2B 비즈니스에 주력한 것도 차지비의 전략이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 서비스는 본질적으론 전기차를 소유한 고객, 즉 B2C 수요가 바탕이 되는 사업이다. 주 대표도 역시 이런 견해에 동의했다.

“차지비는 B2B 기업에 필요한 충전 인프라 설치와 이를 운용하는 관제 시스템에서 출발했습니다. 더불어 충전기 개발, 생산, 설치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비즈니스로 커왔죠. 최근에는 개별 전기차 고객의 입장에서 다양한 충전 멤버십 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고도화 등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미 충전기 원격제어를 통한 다양한 충전지원 서비스, 스마트폰을 이용한 충전 예약 서비스 등 혁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올해 시범사업 예정인 ‘PnC(Plug & Charge)’는 고객 편의성 증대를 위해 차지비가 야심 차게 준비한 무기다. 전기차 충전 시 별도의 인증 과정 없이, 충전기를 차량에 접속하기만 하면 충전과 과금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기술이다. 현재 차지비를 비롯한 주요 충전사업자 네 곳이 이 서비스를 가동하기 위해 MOU를 추진 중이다.

충전 비즈니스의 핵심은 충전기와 고객의 ‘연결’

포스코ICT의 EVC사업부에서 출발한 차지비는 지난 2019년 9월 독립법인으로 스핀오프에 나섰다. 사업 초기부터 사업을 이끌던 주 대표가 새 법인의 CEO로 선임됐다. 이어 그해 12월에는 사모펀드로 대주주가 바뀌었다. B2C 성격이 점점 강해지는 사업 모델에 비해 B2B 포트폴리오 위주인 포스코그룹 내에서는 시너지를 내기 힘들다는 경영적 판단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2022년 11월에는 GS에너지가 인수에 나서면서 단숨에 국내 1위 업체로 올라섰다. 현재 GS그룹에는 에너지 지주사인 GS에너지 산하에 차지비와 GS커넥트가 포진해 전기차 충전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다. GS에너지는 충전 서비스 앱 ‘모두의충전’으로 유명한 스타트업인 스칼라데이터 투자에도 나선 상황이다. 주 대표는 “그룹 내 충전 계열사는 물론 GS칼텍스, GS리테일 등과의 협업이 기대된다”며 “신재생에너지가 더 많이 보급될수록 그룹 내 에너지 공급과 수요에 대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차지비를 인수한 GS에너지를 비롯해 현재 국내 전기차 충전사업에는 SK, 현대자동차, LG전자, 한화, LS 등 대기업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초기 중소 사업자 위주였던 충전 서비스 업계가 자본과 인프라 확충에 유리한 대기업들의 전장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대기업이 너도나도 전기차 충전사업에 뛰어드는 건 폭발적인 시장의 성장세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는 23만1443대에 달했다. 2020년 9만6000여 대 대비 71.5% 증가한 규모다. 2018년과 비교하면 3년 사이 4배 이상 폭증했다. 2021년 한 해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기차만 10만 대에 달했는데, 전 세계에서 2021년 한 해에만 전기차 10만 대 이상이 새로 등록된 곳은 한국과 노르웨이 뿐이다.

완성차 업계 역시 2000년대 들어 전자산업에 불었던 디지털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엔진과 기름으로 대표되던 내연기관 차량이 전기차나 수소차 같은 친환경 자동차 위주로 재편되면서다. 미국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중국도 2035년까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을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판매를 50% 선으로 올리기로 했다. 유럽은 아예 2035년부터 엔진으로 굴러가는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 생산과 판매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충전 인프라에 대한 수요 역시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관제 시스템 고도화가 충전 서비스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죠. 앱 기반의 플랫폼과 충전소라는 물리적 인프라가 결합된 모습은 이 사업이 다른 플랫폼 사업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주 대표의 설명에는 앞으로 차지비가 가져가려는 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숙제가 담겨 있다. 충전기는 사람이 옆에서 24시간 관리할 수 없는 물리적 인프라다. 반면 고객의 니즈는 앱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모바일쇼핑만큼의 사용자 편의성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내 주변에서 충전이 가능한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넘어, 충전 대기 시간 확인, 개별 충전기의 고장 여부, PnC 등 편의성 증대, UI·UX 정교화 같은 서비스 고도화는 여전히 차지비를 비롯한 충전 서비스 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충전 서비스는 고객과의 ‘연결’이 핵심이라 판단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관점에는 변화가 없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최대한 편리하고 쉽게 충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야 제대로 된 연결이 가능해질 겁니다.”

차지비는 현재 회원 11만 명, 자체 운용 충전기 1만5000기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매출 180억원, 영업이익 11억원으로 충전업계 유일의 흑자 기록도 써냈다. 2022년에는 충전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적자로 전환됐지만, 2025년까지 회원 수 50만 명, 자체 충전기 15만 대, 매출 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김상선 기자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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