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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금쪽같은 내 시간 

‘시간은 쏜살같다’, ‘시간은 금이다’,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등 시간에 관한 명언들이 해가 갈수록 와닿는 느낌이다. 20대까지만 해도 항상 넉넉하게 느껴졌던 시간이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눈만 깜짝해도 한 달씩 통째로 흘러가버리는 기분이다. 분명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하루 24시간일 텐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사용자가 시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VR게임 장면. / 사진:안선주
시, 분, 초 단위로 정확한 기준점이 있기 때문에 시간은 객관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스템 같지만, 사실 시간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인 편이다. 물론 시계를 통해 전 세계적인 기준에 따라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처해진 상황과 주변 환경에 따라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의 의미는 제멋대로인 셈이다. 예를 들어 재미없는 수업을 듣거나 하기 싫은 회의에 앉아 있는 시간은 영겁과 같은데, 친구들과 놀거나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할 때는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진다. 시계가 가르키는 객관적 시간(objective time)과 개인이 이를 받아들이는 주관적 시간(subjective time)이 다른 것은 심리학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주제다.

가상 환경의 시간은 현실과 똑같이 흐를까?

시간의 흐름과 이를 인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져왔는데, 메타버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학자들은 가상의 시간도 현실의 시간과 비슷하게 흐르는지, 만약 다르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메타버스는 새롭고 게임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유저는 그 새로운 공간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를 신기 효과(novelty effect)라고 한다. 즉, 새롭고 낯선 대상이 생기면 생존을 위해 그 대상을 빨리 파악해야 하므로 강하게 주의 집중을 하면서 그 대상에 적응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이렇게 새로운 부분에 집중하는 동안, 그 안에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상의 시간은 현실의 객관적 시간보다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진행된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은 현실 세계의 대기실과 그 대기실을 본떠 똑같이 만든 가상 현실의 대기실에 피험자들을 임의 할당하여 같은 객관적인 시간(7분 30초) 동안 기다리게 한 후, 피험자들이 주관적으로 느꼈던 시간의 흐름을 측정했다. 예상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 대기했던 피험자들보다 가상 공간에서 대기했던 피험자들이 훨씬 시간이 느리게 간 것 같다고 응답했다. 실험을 진행했던 연구자들은 아마도 가상 공간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해본 적 없는 피험자들이 대기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더 길게 느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 시간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 정확한 과정과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더 진행되어야겠지만, 어쨌든 유저들이 가상 공간 내에서 겪는 경험들이 주관적 시간을 느끼는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기존 연구들에서 밝혀졌다; 현실의 시간과 가상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메타버스의 거꾸로 흐르는 시간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방향성과 휘발성 때문일지 모른다. 메타버스 공간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속도를 필요와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장점을 활용하여 디자인된 메타버스 환경은 유저들로부터 다양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한 예로, 메타버스 내에서 일출과 일몰 현상을 연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경험한 유저들은 마치 여러 날이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아 주관적인 시간이 더 빨리 흐른 것 같다고 한다. 이는 개기일식이 일어날 때 동물과 곤충들이 주위가 어두워지자 밤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야간 활동을 시작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둘을 연결 짓는 인과관계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특히 보건이나 환경 문제 등 현재의 행동과 미래의 결과 사이에 긴 시간적 격차가 있을 때 심해진다. 따라서 어려운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기존 연구에서는 정신적 시간 여행(mental time travel) 기법을 이용해 피험자들에게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사건의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해왔다.

메타버스 내에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경험하거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다시 경험할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빠르게 감거나 느리게 풀 수도 있다. 필자의 센터에서는 이런 가상의 시간 여행(virtual time travel)이 유저의 태도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실험을 진행해 파악해왔다. 어떤 의사결정 상황(예: 백신을 맞을 것인가, 정부가 대피 지침을 내렸을 때 따를 것인가)을 앞두고 피험자들에게 가상 경험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여러 가지 다른 선택에 따른 결과(예: 백신을 맞았을 때와 맞지 않았을 때의 결과, 대피했을 때와 대피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경험하게 한 후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면, 시간 여행 경험을 하지 않은 피험자들에 비해 선택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어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실험에서 발견했다. 또 현재의 선택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본인 행동에 대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높아져 훨씬 자신 있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메타버스의 유동적인 시간 관념을 백분 활용한 가상의 시간 여행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타임머신이 되어 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인생의 어느 지점으로 날아가 어떤 경험을 할까? 그리고 그 경험은 현재 나의 의사결정들을 어떤 식으로 바꿔놓을까? 메타버스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기에 가능해진 상상이다.

※ 안선주 센터장은…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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