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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GINNING OF A NEW SPACE ERA] 뉴스페이스 시대의 서막 

 

노유선 기자
우주경제 시대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스타워즈’가 시작됐다. 항공우주산업이 글로벌 시장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올드스페이스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대신 민간기업이 이끄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다가왔다. 그만큼 한국 항공우주 업계의 임무가 막중해졌다.

▎지난 2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해양·대기 관측 위성 페이스(PACE) 발사에 성공했다. / 사진:NASA
역사상 시대 구분은 후대 역사가의 몫이었다. 인류는 사냥과 채집이 주된 활동이었던 구석기시대를 거쳐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 등을 지나왔다. 그렇다 해서 인류가 당대를 ‘구석기시대’ 등으로 명명하지는 않았다. 시대 규정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이뤄지지만,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는 다르다.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가 시대 변화보다 먼저 찾아왔다.

뉴스페이스 시대는 정부보다 민간기업이 항공우주(Aerospace)산업을 주도하는 시대를 일컫는다. 반대로 산업의 무게중심이 정부 정책에 놓여 있을 경우 올드스페이스(Old Space) 시대라고 칭한다. 뉴스페이스 시대는 아직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온전히 오지 않았다. 언젠가 도래하리라는 장밋빛 전망만 있을 뿐이다. 우주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도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사업 비중이 정부 역할을 뛰어넘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항공우주산업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우주개발 단계가 올드스페이스에서 미드스페이스(MidSpace), 뉴스페이스 시대로 이어지고 있고, 현재 다수 국가가 미드스페이스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 이른바 뉴스페이스 시대가 갑자기 전 세계에서 화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더는 지구에서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먹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경제를 뒤흔들 만한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자, 전 세계는 지구 궤도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각국은 우주경제 패러다임에서 재빨리 승기를 잡고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해 분주하다. 일찍 진입할수록 경쟁우위를 갖는다는 선점효과는 항공우주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스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항공우주 시장 규모는 2022년 3215억 달러(약 429조원)에서 2032년 약 6782억 달러(약 905조원) 수준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2023년 이래 연평균 성장률 7.8%를 달성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가 발표한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한국 항공우주산업 매출액은 약 2조9519억원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 수준에 불과하다. 다수의 국가가 미드스페이스 시대에 있다고 해도, 올드스페이스에서 뉴스페이스시대로 이어지는 수직선상에서 한국의 위치는 올드스페이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항공우주 경쟁력이 향후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망이 우세하다. 이른바 ‘스타워즈’에서 도태되면 국가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흐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우주강국’이 되려면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한지 산학연 종사자의 의견을 두루 들었다. 한국은 제조업과 IT(정보기술), 조선업 등 기반 기술을 탄탄히 갖추고 있어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있는 반면, 기술력이 높다고 해서 산업 경쟁력이 저절로 따라오진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위성과 위성 발사체에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를 융합해 창의적으로 항공우주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았다.

영화 속 ‘스타워즈’가 현실로


현재 글로벌 항공우주산업은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다. 영국 항공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Flight Global)에 따르면 2022년 매출액 기준 상위 50대 글로벌 항공우주 기업 중 매출 100억 달러를 넘긴 곳은 14개 사에 불과하다. 미국 항공엔진 제조업체 레이시언 테크놀로지스(RTX)와 항공기 제조사 보잉(Boeing),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프랑스의 에어버스(Airbus)가 600억 달러를 웃도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하지만 5위인 미국 방산업체 노스롭그루먼(Northrop Grumman)의 매출액은 그 절반 수준인 약 366억 달러에 머물렀다. 4위와 5위의 격차가 상당하다 볼 수 있다. 한국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매출액 약 50억6300만 달러를 기록해 전체 21위를 차지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orea Aerospace Industries·KAI)의 매출은 약 21억5700만 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소수 기업의 독과점 현상은 국가별 산업 경쟁력 편차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프레스던스 리서치는 2022년 북미 지역의 기업들이 글로벌 항공우주 시장에서 점유율 46% 이상을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오래전부터 진행된 국가 차원의 항공우주 정책이 마침내 빛을 보는 셈이다. 1957년 옛 소련이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데 놀란 미국은 이듬해 서둘러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NASA)을 설립하면서 정부 주도의 항공우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산업 태동기에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은 산업 기반을 닦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969년 NASA가 발사한 아폴로 11호는 달 궤도를 돌다 결국 달 표면 착륙에 성공했다. NASA가 11년 만에 이뤄낸 성과는 후대에 ‘문샷(moonshot)’이라 불리며 혁신적 기술 개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세계 주요국은 앞다퉈 우주전담기관을 설치하며 또 다른 문샷 프로젝트 성공에 전념했다. 중국국가항천국(CNSA)과 인도우주연구소(ISRO),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달 착륙에 성공하며 자국을 우주기술 선진국 반열에 올렸다. 현재까지 주요 20개국(G20) 중 우주전담기관이 없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유엔우주업무사무소(UNOOS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총 74개국(미등록 국가 32개국 포함)이 우주전담기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오는 5월 경상남도 사천에 우주항공청(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KASA)을 개청할 예정이다. 과기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한국연구재단,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의 항공우주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우주항공청 감독은 대통령실 직속 국가우주위원회가 맡을 방침이다. 지난 2월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주항공청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최진혁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 과장은 “대형 프로젝트는 우주항공청이 주도해 민간기업과 협력할 계획”이라며 “소규모 사업의 경우 기존대로 민간이 진행하되 우주항공청의 평가·관리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우주항공청 창설과 맞물려 ‘스페이스2.0(국가 간 경쟁 단계)’을 살짝 넘는 수준에 도달했다”며 “올드스페이스도 뉴스페이스도 아닌 미드스페이스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 상황에서 뉴스페이스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목표 시점은 2045년이다. 무려 11년 만에 현재 1% 수준인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1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 따르면 2032년에는 달 착륙, 2045년에는 화성 착륙에 성공하는 것이 우주항공청의 목표다.

비우주 기업도 새로운 플레이어로 포용해야


경남 사천(우주항공청)과 대전(연구개발단지), 전남 고흥(나로우주센터)을 3대 축으로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은 위성과 위성 발사체 연구개발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저궤도 지구 관측 위성(다목적 실용위성, 차세대 중형위성, 초소형 군집위성) 20기와 KPS(위성항법시스템) 1기, 저궤도 위성통신 시스템 1기, 정지궤도위성(천리안 위성 3호) 1기, 부품검증위성(큐브) 3기, 포집검증위성 1기 등을 발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형 발사체는 총 4회, 한국형 발사체로 불리는 저궤도 발사체는 총 3회 발사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의 위성기술 수준은 소형·고성능 전자 장비로 진화 중”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우주개발은 다양한 분야의 융합공학이기 때문에 비우주 산업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주 분야에 진출하는 비우주 기업도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양한 분야가 공존해야 혁신이 발생하고 신규 시장과 새로운 수요를 발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대표적 제약사인 보령은 지난 2022년 “다가오는 우주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주 헬스케어와 관련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겠다”며 CIS(Care In Spac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해 보령은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ISS) 건설·운영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에 5000만 달러(약 642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국내 섬유업체 송월타올도 우주경제 시대를 앞두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탄소섬유 기술을 토대로 항공우주 부품 소재 산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5년 송월타올은 경남 사천에 있는 항공기 복합재료 업체 영진 C&C를 인수해 항공 부품 경량화 사업에 발을 디뎠다. 탄소섬유는 높은 열과 압력에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게가 가벼워 철근을 대체할 미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5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3차의 발사 장면.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편 그동안 한국 항공우주산업을 지탱해온 풀뿌리 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면 기존 플레이어의 경쟁력을 한순간에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는 지난 2016년 재사용 로켓 기술을 토대로 로켓 발사 비용을 상당 부분 줄였다. 덕분에 스페이스X는 2022년 평균 6일에 한 번꼴로 로켓을 발사했으며 그해 말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서비스 ‘스타링크’ 가입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아직 상장 이전인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말 1800억 달러(약 232조원)로 평가됐다.

국내에는 LIG넥스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항공우주 기업도 많지만 이노스페이스와 텔레픽스, 제노코 등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벤처스타트업도 다수 존재한다. 2019년 항공우주 스타트업 ‘텔레픽스’를 설립한 조성익 대표는 “우주항공청이 조정자로서 과도한 내부경쟁을 방지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항공우주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여하길 바란다”며 “현재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은 국내시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수출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우주항공청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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