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제조사다. 프랑스혁명을 거쳐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으며 무려 269년 동안 단 한 번도 끊김 없이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최고의 하이엔드 워치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오트쿠튀르 디자이너이자 바쉐론 콘스탄틴 ‘One of Not Many’의 탤런트 이칭 인(Yiqing Yin)이 콘셉트 워치 에제르 더 플리츠 오브 타임과 함께 시계의 정신을 담은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선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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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목표다. 1755년 설립된 바쉐론 콘스탄틴은 여러 세대를 지나는 동안 숙련된 장인들을 통해 탁월한 워치메이킹 기술을 충실히 계승하며 오랜 기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259대 교황 비오 11세,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뿐 아니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등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이 즐겨 착용한 시계로도 잘 알려져 있다.바쉐론 콘스탄틴이 단지 오랜 역사로만 인정받는 건 아니다. 미묘한 오차를 보정하는 초정밀 기술인 투르비용, 기계식 메커니즘의 역작으로 불리는 마스터 크로노그래프 기술 등 시계사에 이정표를 세운 기술적 혁신을 앞세워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꾸준히 개발해왔다.축적된 제조 기술과 예술적 가치, 미학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특별한 기술과 시그니처 디자인이 어우러진 독특한 시계들을 창작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유구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장대한 시계 역사를 만든 창조가들
▎메종 설립 26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레퍼런스 57260’.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라는 기록을 세우며 메종의 정교한 시계 제작 기술력을 입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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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장마르크 바쉐론(Jean-Marc Vacheron)이 스위스 제네바에 시계 공방을 열면서 바쉐론 콘스탄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시계 제조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최초의 견습생을 고용해 가르쳤고, 메종의 탄생 시점을 증명하는 고용 계약서를 작성해 현재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시계 제작업체로 평가받게 되었다.그의 기술은 둘째 아들 아브라함 바쉐론(Abraham Vacheron)에게 전수되었다. 가업을 이어받은 아브라함 바쉐론은 프랑스혁명과 프랑스 군대의 제네바 점령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회사를 지켰다. 1789년대 말, 그는 두께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복잡하고 정교한 무브먼트를 탑재한 레핀(Lépine) 스타일의 시계를 제작했고, 이는 브랜드의 명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1810년부터는 손자 자크 바텔레미 바쉐론(Jacques-Barthelemi Vacheron)이 메종의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는 야심 차고 대담하게 회사를 이끌며 두 가지 멜로디를 연주하는 뮤지컬 워치를 비롯해 더욱 정교한 워치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스위스 국경을 넘어 최초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시계를 수출하기 시작했다.이후 그와 최고의 시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유능한 사업가 프랑수아 콘스탄틴과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이름을 딴 시계 브랜드를 만들고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하며 드넓은 시장을 개척하고, 바쉐론 콘스탄틴을 널리 알렸다.1819년 7월 5일, 토리노로 여행하는 동안 프랑수아 콘스탄틴은 새로운 파트너가 된 자크 바텔레미 바쉐론에게 쓴 편지에 “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라는 문구를 담았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메종의 모토가 되어 바쉐론 콘스탄틴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1839년에는 조지 어거스트 레쇼가 테크니컬 디렉터로 합류했다. 그는 칼리버의 무브먼트 부품을 동일한 품질로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팬토그래프 기계를 발명해 부품을 일일이 수제작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이를 통해 품질과 생산성의 혁신을 이끌며 현대 시계 기술 발전에 공헌했으며 브랜드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계를 예술로 승화하는 장인의 손길
▎1.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에제리 문 페이즈 워치. 오트쿠튀르 패브릭의 섬세한 플리츠를 떠올리게 하는 다이얼이 돋보인다. / 2. 골드와 같은 메탈에 기계를 활용하여 장식을 새기는 기요셰 과정. 서로 다른 2개의 기계를 사용하여 디자인을 완성한다. / 3. 에나멜 장인이 매우 가느다란 브러시를 사용하여 에나멜 파우더를 바르고 있다. / 4. ‘제네바 에나멜’ 전통을 바탕으로 다이얼을 장식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캐비노티에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플라잉 더치맨 워치. / 5. 시계 부품에 양각 또는 라인 인그레이빙 작업을 하는 마스터 인그레이빙 장인. / 6.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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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계승. 이 두 가지 요소는 메종의 장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장인은 겸손함과 지식을 계속해서 전수하려는 의지를 원동력으로 활약한다.바쉐론 콘스탄틴의 숙련된 장인은 인그레이빙 장인, 에나멜 장인, 기요셰 장인, 주얼리 장인, 워치메이커로 구성되며,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마치 가보처럼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 진귀한 재능을 지닌 각 세대의 장인들은 마치 릴레이 경주를 하듯 서로에게 장인 기법을 전달하며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이러한 각 장인들의 작업물과 창의성에 따라 최종 결과가 결정되며, 이들의 완벽한 기술력과 끊임없는 소통을 기반으로 탁월함을 향한 도전 정신을 구현하는 시계가 탄생한다. 장인들은 메종의 심장이자 영혼 그 자체인 셈이다.메종 설립 이후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전수하고 발전시켜온 장인 기술의 노하우는 혁신의 전통이 되었다. 시계의 장식 디테일은 장인이 직접 설계한 다양한 도구나 이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정교하고 오래된 기계를 사용하여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인문주의와 세상을 향한 열린 시각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장인들은 인그레이빙, 기요셰, 에나멜링, 보석 세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며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법을 추구함과 동시에 오랜 역사를 지닌 장식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한계 없는 하이워치메이킹 기술
▎1995년에 선보인 메르카토르(Mercator) 옐로 골드 워치. 메르카토르가 그린 지구 반구의 지도를 에나멜 기법으로 재현한 다이얼에 바이-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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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다섯 차례나 넘어온 최고의 브랜드답게 바쉐론 콘스탄틴은 극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술력을 구현하며 새로운 시계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자리매김한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는 인디케이터가 다이얼을 완전히 회전하지 않는 대신 전체 측정 부분을 커버한 후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움직이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적용했다.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는 다이얼에 표현의 자유를 선사하며 바쉐론 콘스탄틴 특유의 우아하고 독창적인 워치메이킹 스타일을 상징한다.이 밖에도 퍼페추얼 캘린더, 문 페이즈 디스플레이, 스카이 차트 등 천문학적 기능을 탑재한 시계, 소리로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을 탑재한 스트라이킹 워치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1874년에는 첫 번째로 알려진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이며 이후 이 기능을 통합한 그랜드 컴필리케이션 시계로 두각을 나타냈다. 1901년에는 숙련된 기술과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투르비용을 포켓 워치에 탑재해 선보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투르 비용이 탑재된 손목시계, 시계 애호가와 수집가들을 위한 특별한 피스들을 출시했으며 이는 곧 메종의 워치메이킹 헤리티지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브랜드의 상징, 말테크로스
▎클래식한 다이얼과 대담한 케이스가 조화된 대조적 디자인으로 개성을 드러낸 피프티 식스 셀프 와인딩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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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리는 브랜드의 심볼 ‘말테크로스’는 1880년에 탄생했다.화살촉 4개를 붙여놓은 듯한 말테크로스는 메인 스프링에 일정한 힘을 가해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되던 배럴 커버에 장착된 무브먼트의 구성품이었다. 시계의 정확도에 관여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십자가 모양의 부품 말테크로스를 브랜드 로고로 내세우며 정교함을 추구하는 메종의 신념을 드러내고자 했다. 베른에 자리한 스위스 연방 상표등록처에 등록된 이 로고는 브랜드의 상징이자 정교한 기술력의 표상이다.
전설을 써 내려가는 아이코닉 워치
▎바쉐론 콘스탄틴의 설립 250주년을 기념해 단 7피스만 한정 생산된 뚜르 드 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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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부터 지금까지 파인 워치메이킹 세계에 찬란한 아카이브를 쌓아가고 있다. 1916년에는 인도 파티알라 지역의 왕인 부핀드라 싱(Bhupinder Singh), 1918년에는 미국 자동차산업의 전설이자 시계 수집가인 제임스 워드 패커드(James Ward Packard), 1946년에는 이집트의 파루크(Faruk) 왕 등 명망 높은 왕가와 귀족, 시계 수집가를 위한 특별한 시계를 제작해 오늘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시계들을 세상에 선보였다.1921년에는 미국 시장을 겨낭해 쿠션형 디자인, 1시 방향에 크라운이 위치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손목시계 ‘아메리칸’을 탄생시켰고, 1931년에는 특허받은 스켈레톤 무브먼트가 30일간 파워리저브를 제공하는 ‘아르카’를 선보이며 예술 학회에서 주최한 콩쿠르 드 라 리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1932년에는 루이 고티에(Louis Cottier)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Ref. 3372’로 알려진 최초의 고티에 시스템을 탑재한 월드 타임 시계 ‘외흐 유니버셜’을 선보였다. 중앙 다이얼 주변을 회전하는 디스크로 24개 타임 존을 표시하며, 31개국 주요 국제 도시의 이름이 새겨진 외부 베젤을 장착한 이 컴플레이션은 다양한 국가의 지정학적 상황과 연계하며 많은 발전을 이뤄 메종의 현재 컬렉션에도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1979년에는 총 130캐럿인 118개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고가의 주얼리 시계로 이름을 알렸던 ‘칼리스타’, 2005년에는 메종 설립 250주년을 기념해 전례 없이 16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한 마스터피스 ‘뚜르 드 빌’을 출시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21년에는 메종의 복원 공방과 헤리티지 부서의 전문성을 모두 동원해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메리칸 1921 모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계를 재현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워치메이킹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그 유산과 전통 기술의 보존·계승·지속적인 발전을 향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노력을 반영했다. 이렇듯 끊임없이 장인정신과 미학적 코드를 기술적으로 구현한 시계들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워치메이커로서 입지를 다졌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
▎선버스트 그린 다이얼의 강렬한 매력이 돋보이는 오버시즈 셀프 와인딩 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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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인 리치몬트가 바쉐론 콘스탄틴을 인수하면서 브랜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과 투자가 시작되었다.또다시 도약의 기점을 맞은 브랜드는 미니멀 미학을 선보이는 ‘패트리모니’, 여행과 세상을 향한 열린 시각을 담은 ‘오버시즈’, 전통적인 디자인과 혁신을 결합한 ‘트래디셔널’, 메종을 상징하는 말테크로스 러그로 레트로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담아낸 ‘피프티식스’, 오트 오를로제리와 오트쿠튀르의 만남을 이끌어낸 ‘에제리’ 등 새로운 컬렉션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이에 더해 메티에 다르 컬렉션에서는 숙련된 장인의 손끝으로 완성한 시계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 메종의 가장 진귀한 타임피스를 선보이는 캐비에노에 컬렉션 등으로 경이로운 디테일과 정교함을 앞세운 예술적인 워치메이커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의 탄생
▎1950년대의 미니멀한 시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절제된 디자인의 패트리모니 문 페이즈 레트로그레이드 데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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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메종 설립 260주년을 기념해 8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레퍼런스 57260’을 선보였다. 이름처럼 57개 컴플리케이션을 갖춘 이 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멀티플 캘린더와 더블 레트로그레이드, 스플릿 세컨즈를 비롯한 기능들은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분야에서도 특히 어려운 기술로 알려져 있다. 1920년대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발전해온 기계식 시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메종의 대작 ‘레퍼런스 57260’은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시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정수를 보여주며 “역시 바쉐론 콘스탄틴”이라는 찬사와 함께 메종의 정교한 시계 제작 기술력을 또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전통과 혁신의 능숙한 조화올 시즌에도 메종은 독창적 기술, 미학적 완성도, 장인정신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며 인기 컬렉션을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2004년 첫선을 보인 이후 절제되고 세련된 워치메이킹 미학으로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해온 패트리모니 컬렉션을 재해석한 ‘패트리모니 매뉴얼 와인딩’과 ‘패트리모니 문페이즈 레트로그레이트 데이트’, 투르비용과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가 탑재된 리미티드 에디션 ‘트래디셔널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엑설런스 플래타인 컬렉션’을 출시해 시계 애호가의 시선을 모았다. 또 프랑스에서 오트쿠튀르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이칭 인(Yiqing Yin)과 협업해 다이얼을 그의 시그너처인 플리츠 패턴으로 장식한 여성 시계 ‘에제리 문페이즈’와 ‘에제리 더 플리츠 오브 타임, 컨셉 워치’를 출시하기도 했다.역사, 기술,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다양한 기록을 보유한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자리 잡은 바쉐론 콘스탄틴. 여러 세대를 지나며 숙련된 장인들이 충실히 계승해온 탁월한 워치메이킹 기술과 미학적 디자인이 어우러진 독특한 시계는 AI시대에도 결코 대체 불가능한 창조물이다. 이것이야말로 약 270년 동안 단 한 번도 끊김 없이 메종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자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제공 바쉐론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