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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창작의 동반자 된 AI: 더 큰 위대함을 위하여 

 

영화, 드라마, 음악, 심지어 문학에서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제 AI는 창작의 도구로서 그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정받게 됐다.

▎영화 [브루털리스트] 포스터.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억양을 헝가리식으로 바꾸는 데 AI가 활용됐다.
예술과 기술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시대, AI가 창작 과정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때론 환영받고 때론 의심받지만, 확실한 건 이제 AI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받은 영화 [브루털리스트(The Brutalist)]만 봐도 그렇다. 이 작품은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대사를 헝가리식 억양으로 교정하는 데 AI를 활용했다. 20세기 초반의 예술가처럼 인간의 감성을 기반으로 작업했지만, 그 배경에는 21세기 기술이 있었다. AI가 그의 연기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세련된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게다가 AI는 건축물 디자인까지 생성하며 영화의 미장센을 강화했다. 제작진은 이를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거나 색보정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창작자의 의도를 돕는 AI.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파트너 아닌가.

오스카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Flow]도 흥미로운 사례다. 한 명의 감독이 데스크톱 컴퓨터 하나로 5년 동안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 자체가 혁명적이다. 마치 한 사람이 붓 하나 들고 거대한 벽화를 그린 듯한 장면들. AI는 복잡한 물리 시뮬레이션을 단순화하고, 배경을 자동 생성하며, 감독의 예술적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예술적 비전을 현실로 만든 AI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아니다. [Flow]는 AI가 창작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큰 예산과 대규모 팀 없이도 예술적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AI는 예술 전반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비틀스의 신곡 ‘Now and Then’은 존 레논의 오래된 데모 테이프를 AI로 복원해 그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되살린 사례다. 과거의 유산을 현재로 되살린 이 작업은, AI가 창작의 연속성을 확장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자음악가들은 AI를 새로운 악기로 활용하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곡을 완성한다. 마치 음악가가 새로운 신시사이저를 도입하듯, AI는 창작자들에게 또 하나의 혁신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미술에서도 AI는 독창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아티스트들은 AI 생성 모델을 활용해 전에 없던 스타일을 탐색하고, AI가 만든 작품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사례도 등장했다. 코스모폴리탄 잡지는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표지로 사용했으며, 패션업계에서는 AI가 디자인한 의상이 런웨이에 올랐다. 이제 AI는 예술가의 팔레트가 되었고, 그 안에서 창작자는 새로운 색을 발견하고 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와 기존 창작물의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에 대한 법적·윤리적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계가 그린 그림에 인간이 서명할 수 있을까? AI가 만든 작품이 예술가의 작업일까, 아니면 AI의 것일까?

문학에서도 AI의 실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는 AI가 공동 집필한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고, 일부 작가들은 AI를 협업 파트너로 삼아 스토리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나 대사를 다듬는다. 과거에는 작가가 영감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뒤졌다면, 이제는 AI와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플롯을 제시하고, 문장 스타일을 분석해 새로운 조합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문장 속에서 인간적인 감성과 깊이를 찾을 수 있을까? AI가 제공하는 것은 창작의 기초적인 틀일 뿐, 한 문장에 담긴 울림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중요한 사실은 하나다. AI는 창작의 도구이지, 창작의 본질이 아니다. 이는 자동차가 등장했다고 사람들이 걷기를 멈추지 않은 것과 같다. AI는 더 멀리,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만,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인간이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이 곧 예술과 창작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다.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인간의 선택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법적·윤리적 문제도 함께 따라온다. AI가 만든 콘텐트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 일부 국가에서는 AI가 독립적으로 생성한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라면, 창작자의 개입이 어느 정도여야 ‘진짜 창작물’로 인정받을까? AI가 기존 작품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원 저작자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받아야 할까? 최근에는 AI 창작물에 대한 법적 책임이 창작자에게 있는지, AI를 개발한 기업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만큼 법과 윤리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결국 AI는 창작자의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다. 우리는 이를 활용해 더 효율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더 진정성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사고와 비전이다. AI가 창작을 돕는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창작의 본질적인 가치일 것이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오롯이 창작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몫을 제대로 활용하는 창작자에게 AI는 새로운 시대의 강력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이상인 - 이상인 디자이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미국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리즈의 저자이다.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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