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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미래 의료인을 양성하는 가상 세계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중증외상센터> 덕에 잠시 주춤했던 의학 드라마 붐이 다시 일 듯하다. 드라마에서는 자원과 일손 부족으로 중증외상센터 의사들과 스태프들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주인공 백강혁이 마법처럼 매번 상황을 해결해줬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VR 수술 시뮬레이션으로 수련자는 위험 없는 환경에서 복잡한 수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 / 사진:THE UNIVERSITY OF NEBRASKA MEDICAL CENTER
환자를 살리겠다는 열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장비·공간·인력 부족, 인구 고령화 등 난제가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1~2년 새에 AI가 활성화되고 메타버스의 접근성이 점차 좋아지면서 여전히 자원과 일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의료계에서 가상·혼합현실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차세대 의료진 양성을 위한 교육과 훈련 솔루션으로 적극 도입하는 중이다.

현재 북미에서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교육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교사나 강사가 획일적으로 학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룬 기존시스템에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습 내용을 실행해보는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교실 디자인(교실 앞을 바라보는 형태→전방위로 학생들이 위치를 옮길 수 있는 형태)은 물론, 수업 방식(주입식→토론)까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능동적 학습이 중요한 이유는 학습한 정보를 바로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그 맥락 안에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내재화 과정이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또 차후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학습한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기존 학습법에서는 이런 현장 경험을 주로 인턴십과 임상 실습 등으로 해결해왔는데,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인턴들을 현장에서 교육할 인력이 부족해 효율성이 떨어졌다. 의과대학에서는 실습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병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놓은 시뮬레이션 환경의 제작·활성화를 몇 년 전부터 다양하게 시도해왔다.

이런 시뮬레이션 센터들이 메타버스에 주목하고 있다. 가령 네브래스카주립대 의과대학은 CAVE, 모션센서 등 다양한 메타버스 기술이 탑재된 시뮬레이션센터 iEXCEL을 운영 중이고, 예일대학교도 소아과에서 청소년과 유아를 대상으로 메타버스 시뮬레이션 센터를 운영한다. 미국 연방정부도 메타버스형 시뮬레이션 센터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립인간게놈연구소(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소속의 몰입형 시뮬레이션 프로그램(Immersive Simulation Program)과 미국 재향군인국(Veteran’s Affairs) 소속 VA Immersive 센터가 있다.

메타버스형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서 게임 환경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디지털 플랫폼마다 실습 교육에 적용했을 때 장단점이 있는데,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이 모호한 혼합현실의 경우 시뮬레이션 센터에 배치된 기존 장비에 디지털 아이템들을 덧입혀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고, 헤드셋을 착용하지 않는 사람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가령, 사람 몸 안에 있는 장기나 혈관들을 투시하는 듯 보여줄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들이 의료 기구 표면에 붙어 있는 상황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시뮬레이션 센터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 형태의 마네킹에 혼합현실 기술을 접목하면 마네킹 하나로 다양한 병리학적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상환경에 완전히 몰입하는 가상현실의 경우 몰입감을 이용해 운동감각적 정보에 대한 노출을 점진적으로 늘려 사용자의 학습 속도에 개별적으로 맞출 수 있다. 중증외상센터와 같은 환경에서 의료진은 긴박하고 스트레스 요소가 많은 순간에도 빠르고 냉철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철저한 사전 훈련 없이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의료 시뮬레이션 환경에서는 응급실이나 수술실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을 여러 레벨로 나눠 사용자에게 점차 스트레스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처음에는 경증 환자, 후반으로 갈수록 중증 환자, 예고 없이 일어나는 코드블루 상황 등을 예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가상환경에서 점점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응급 상황이 주는 압박감에 예민도가 낮아지고 감정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또한 시간과 장소, 동료들의 눈치, 비용에 구애 없이 더 연습이 필요한 부분에 집중해서 필요한 만큼 반복할 수 있다. 특히 AI 탑재로 정확한 평가와 피드백을 받고, 그 데이터를 토대로 본인의 학습 과정을 추적 관찰할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타버스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은 의료진은 순발력, 손-눈 협응능력, 수술 과정에 대한 지식이 메타버스를 이용하지 않은 대조군보다 높다고 한다. 메타버스를 의학 쪽에서 활용한다고 하면 흔히 환자용 디지털 치료기기(Digital Therapeutics)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제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양성에도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메타버스 의학 콘텐트


▎대화형 3D 프로그램을 사용해 학생과 의료 전문가가 개인보호장비의 착용·탈의 절차를 연습할 수 있다. / 사진:THE UNIVERSITY OF NEBRASKA MEDICAL CENTER
최근 메타버스 관련 학회 여러 곳에서 자주 거론되는 컴퓨터비전 기술 중 하나는 3D Gaussian splat이다. 이 기술 덕분에 몇 주 혹은 몇 달씩 걸렸던 기존의 3차원 환경 제작 방식에서 단 몇 분 내에 고화질 비디오에 버금가는 수준의 3차원 환경 제작이 가능해졌다. 3월에 열린 IEEEVR 학회의 기조 연사는 3D Gaussian splat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비디오처럼 고화질이 아닌 픽셀로 된 그래픽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아직까지는 전문가가 아닌 유저들이 활용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곧 일반 유저들도 스마트폰에서 이 기술을 손쉽게 활용해서 3차원 공간을 몇 분 안에 혹은 거의 실시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단 몇 밀리미터만 벗어나도, 몇 초만 늦어도 생명이 오갈 수 있는 긴박한 수술실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때는 정확한 묘사가 핵심이다. 기존 메타버스 솔루션들은 정확도가 떨어져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활용하기 어려웠다면, 컴퓨터비전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손쉽게 선명한 ‘고퀄리티’ 디지털트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간 그림, 사진, 영상 등 주로 2차원으로 공부하던 인체 요소들을 이제 3차원으로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메타버스 기술로 분간하기 힘들 만큼 현실감 있게 제작되는 디지털트윈 시뮬레이션들이 의학 교육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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