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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의 미인별곡 >>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700년 사랑 

두 무덤 사이 뚫린 구멍
아직도 오가는 그리운 密語 

기황후와 노국공주. 1300년대 중반에 고려와 원나라를 오간 파란만장한 운명의 두 여인이 있었다. 한 여인은 고려 여인이고, 한 여인은 원의 여인이었다. 조선이 원나라에 ‘제물’처럼 바친 공녀(貢女)였던 기순녀는 놀랄 만한 생존본능과 권력의지로 황실의 중심을 파고들어 결국 황후 자리를 꿰찬다. 노국공주는 원나라의 왕족으로 고려 남자를 따라 개성으로 들어와, 자신의 친정과 조국에 반기를 드는 남편 공민왕을 열심히 내조한다.



역사는 두 여자를 어떻게 평가할까? 기황후를 보는 시선은, 최소한 이 땅에서는 상당히 차갑다. 그녀는 원나라 연경에 고려붐을 일으켰고, 조선을 성(省)으로 만들어 제후국화하려는 황실의 기도를 막았으며 치욕적인 고려 공녀시스템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위세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렸던 그녀의 오빠들이 이미지를 망쳤다. 공민왕은 반역죄의 꼬리를 붙여 기철을 비롯한 기황후의 척족들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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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호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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