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기획 >> 6·29선언 24주년 노태우 재조명 

노태우는 ‘물태우’였나? 

24년 전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이은 6·29선언으로 탄생한 6공화국과 노태우 대통령은 결코 재임 중의 업적이 가볍지 않은데도 시중의 평가는 거의 낙제점이다. 하지만 일부 대통령학 전공자들은 실제 일을 못 해서라기보다는 밉보인 이미지 때문에 저평가된 지도자라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나아가 그의 장점 중에는 미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도 많다고 했다. 논쟁적 인물 노 전 대통령을 뒤집어봤다. 5·17 쿠데타·비자금 사건 불구,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갈등과 대립 조율 전환기 우파 대통령의 본보기 리더십 발휘, 차기 대통령이 배워야 할 덕목 많다는 평가도 참모들, 8월 팔순 기념해 글모음집 <노태우 대통령-6공화국을 말한다>(가제) 발간 예정
“처음에는 양측의 가방 안에서 녹음기가 돌아갔고, 남과 북 모두 그 사실을 알았다. 비밀회담이 거듭되면서 나중에 내가 ‘격식을 허물자’고 말했다. ‘녹음을 하면 서로 자유롭지 않으니까 녹음 없는 가운데 편하게 말하자’고. 그러나 상대방이 보이스펜 같은 걸로 몰래 녹음할 가능성을 전제로 할 말은 하고 안 해야 할 말은 아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42회에 걸쳐 남북 비밀회담에 참여한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전하는, 남북이 서로를 대하는 기본자세다. 6공화국의 북방정책을 주도한 그에 따르면 남북 비밀회담에서 녹음은 기본이다. 당시 한국대표단도 녹음 자료를 풀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거듭된 접촉에서 신뢰가 쌓이자 비밀회담 취지에 따라 녹음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 뒤 비밀접촉에서 남측은 전부 메모를 했고, 북측도 남측이 알게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107호 (2011.07.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