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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부르는 ‘소아우울증’] 골병드는 아이 속 엄마는 모른다 

 

백승아 월간중앙 수습기자 [sabaek@joongang.co.kr]
최근 5년간 우울증 진료받은 9세 이하 아동 1만4000명 넘어 사춘기 증상과 유사해 발견 어려워… 지나친 사교육이 유발률 높인다 과거 성인 질병으로만 여겨지던 우울증이 아이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연령층도 5~6세로 낮아졌다. 최근 5년간 우울증 진료를 받은 9세 이하 아동은 1만4000여 명. 소아정신과 전문의들과 아동심리상담전문가들은 과다한 사교육에서 오는 학업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우울증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높은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초등학생이 적지 않다.

동재(가명·8)는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아이였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와의 관계가 좋았다. 엄마 말을 잘 따랐다. 학원 다니는 것도 즐거워했다. 오히려 학원을 더 많이 다니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엄마는 학원 다니기를 즐거워하는 동재를 학원에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국어·영어·수학·논술·태권도·미술 등 동재가 다닌 학원은 모두 7개. 하교 후 바로 학원으로 가야 했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 시간도, 만화영화를 보며 편히 쉴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학원 가기를 재미있어 하는 동재가 엄마는 대견하기만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동재가 “머리 아프다” “배 아프다” 등의 이야기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밥도 먹기 싫어하고,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고민하던 엄마는 동재를 집 근처 사설 심리상담센터에 데려갔다. 간단한 그림검사와 놀이검사를 했고, 상담 전문가와 상담 시간을 가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동재의 증상은 ‘소아우울증’이었다. 상담을 맡았던 아동심리상담사는 동재의 우울증 증상의 원인을 학업 스트레스로 지목했다.

“높은 스트레스로 내적 분노가 많이 쌓였어요. 펀치 날리기를 놀이검사로 하는데, 1시간 내내 지칠 때까지 펀치 볼을 치더라고요. 그림검사에서도 대상을 아주 작게 그리고 아래 배치하는 특징을 보였고요. 사물을 작게 그리는 건 우울한 아동의 대표적 특성이거든요.”

8세 아이가 ‘죽고 싶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심리상담센터에서의 동재는 이제까지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엄마는 놀랐다. “만약 동재가 더 어렸으면 어땠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마음껏 뛰놀았을 거예요”라고 답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너무 속상했다. 8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엄마에게조차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이보다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이 컸다. 엄마는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이 가르쳐야 동재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동재가 힘들어했다. 엄마는 그길로 학원을 모두 끊었다. 심리상담사의 간곡한 당부기도 했지만, 동재 엄마의 뜻이기도 했다. 당장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동재와 같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9세 이하 아동들은 1만4499명. 연평균 약 2900명의 아이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셈이다. 실제 전문의들은 과거에는 중·고등학생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어린 초등학생의 비중도 커졌다고 말한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는 “우울증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서서히 시작된다”면서 “흔히 우울증은 성인에게만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엔 아동들에게서도 자주 발견된다”고 말했다.

소아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는 성격이 달라 발견하기가 어렵다. 사설 심리상담기관인 한국심리상담센터 강용 원장(상담학 전공 박사)은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들도 아이가 우울증이라고 하면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분 나빠하며 돌아가는 엄마도 있었다”고 말했다.

우울한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성인 우울증 환자와 달리 소아우울증에 걸린 아동의 40%는 짜증을 낸다. 대부분이 복통·두통 등의 신체적 증상을 동반한다.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거나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하기도 한다. 야뇨증과 야맹증, 폭식과 소식, 수면장애 등의 증상도 동반한다. 최근 아동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주의력결핍장애)도 소아우울증 증상과 함께 올 때가 많단다. 천근아 교수는 “소아우울증 증상은 성인우울증과는 달리 다양하고 복잡해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면서 “단순한 반항이나 사춘기 증상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부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울증 증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강용 원장은 “상담 치료를 하다 보면 8세 아이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다”면서 “아이들의 우울증을 가볍게 넘기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동기 우울증은 학업 부진과 대인관계 부적응 등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게임중독과 같은 중독 증상으로도 이어진다. 게다가 아동기의 우울증은 만성적인 성인우울증으로 재발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소아우울증은 아이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망치는 주범이 되며, 화목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위험요소다.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

박호성(가명·19) 군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12세 때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은 박군은 엄마의 높은 교육열 탓에 어릴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새벽 6시 30분부터 일어나자마자 영어공부를 해야 했고, 학원도 다섯 군데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박군은 입을 닫았다.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길을 걸을 때도 땅만 쳐다봤다.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들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엄마는 박군을 정신과에 데려갔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박군의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게임중독에 빠졌고, 학업 부진과 대인관계 부적응 등의 문제로 박군은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호성이는 어릴 때부터 형에 비해 공부를 잘했어요. 큰애는 공부하기를 싫어했거든요. 저도 모르게 호성이에게 거는 기대가 컸죠. 큰애가 공부를 안 하니까 호성이만큼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제 욕심이 화를 부른 거죠. 지금도 호성이만 보면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

박군의 어머니 송정희(가명) 씨는 현재 암 투병 중이다. 우울증으로 끝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들을 볼 때마다 깊어진 가슴속 응어리를 처리 못 하고 결국 암이 발병했다. 박군의 아버지도 두 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집에서 요양 중이다. 예전보다 상태가 호전된 박군은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증 약은 복용하고 있다.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에요. 전 학교 생활 내내 특별 관심 대상이었어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절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부모님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공부만 잘하라고 할 게 아니라 진짜 아이들의 마음을 배려해야 한다고요.”

소아우울증은 심한 경우 자살로도 이어진다. 연세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소아우울증을 제때 발견해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우울증이 돼 심한 경우 끝내 자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성훈(가명·12)이의 경우가 그랬다. 겨울의 찬 기운이 유난하던 2월의 어느 날 밤, 평소대로라면 성훈이는 방에서 학원숙제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날만은 이상했다. 숙제하기 싫다고 툴툴대야 정상인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 엄마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책상 위에 엎드려 있어야 할 성준이는 방문 손잡이에 도복 끈으로 목을 맨 채 쓰러져 있었다. 하루 4시간 정도 학원을 다녔던 성준이는 늘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힘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 초등학생 자살 사례는 많지 않다. 2008년엔 5명, 2009년엔 6명의 초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은 늘어가고 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자살 관련 상담을 받은 10~12세 아이들의 수가 2005년엔 1명, 2006년엔 34명, 2007년엔 53명이었다. 2008년엔 조금 줄어 21명에 그쳤지만, 2009년엔 자살 관련 상담을 받은 9세 이하 아이들이 무려 203명이나 됐다.

아동기의 우울증은 대개 불안정한 가정환경이나 잘못된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최근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대다수 아동의 경우 지나친 사교육에 따른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때가 많다고 말한다.

실제 올 4월 한림대성심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현주 교수팀은 ‘사교육과 아동 정신건강의 연관성’ 연구에서 지나친 사교육이 소아우울증 유발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홍 교수팀은 경기도 군포시 소재 5개 초등학교의 1학년 761명을 대상으로 사교육 시간과 그들의 행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연구를 맡았던 홍 교수는 “부모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중요한데, 사교육을 많이 받는 아이들은 그런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사교육이 소아우울증을 일으키는 또 다른 위험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넘겨 받은 ‘2009~2010년 서울 25개 자치구별 5~14세 우울증 진료인원’ 자료는 사교육과 소아우울증과의 연관 관계를 유추해보게 한다. 사교육 밀집지역(강남·서초·송파구 등)의 우울증 진료 인원이 사교육 기관이 밀집하지 않은 지역에 비해 높았기 때문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5~14세 우울증 진료 인원은 816명으로 전체 진료 인원(4002명)의 20.4%를 차지했다. 그에 비해 사교육 비밀집 지역인 강북구(119명)와 은평구(95명), 동대문구(80명)의 진료 인원은 모두 294명이었다. 강남 3구의 전체 인구수는 2009년 기준으로 약 157만 명이고, 강북구(35만 명)와 은평구(47만 명), 동대문구(39만 명)의 전체 인구수는 약 121만 명이다. 양쪽 지역의 5~14세 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지 않아 딱 떨어진 비교는 어렵지만 강남 3구의 아이들이 두 배 이상 더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았다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이를 두고 사설 심리상담기관인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의 이향숙 소장(아동심리치료 박사)은 “강남권은 다른 학군에 비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교육열이 높아 이곳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라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대다수 아동들의 우울증 원인은 높은 학업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그의 상담센터는 강남구 논현동에 있다.


강남권과 강북권 아이들의 우울증 원인에도 차이가 있었다. 동대문구의 한 상담센터 교사는 “우울증과 정서불안 등의 문제로 상담소를 찾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이혼 등이 원인이 된다”면서 “간혹 학업 스트레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 지역의 아이들은 우울 증상을 보일 만큼 사교육을 많이 받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사설 심리상담기관인 한국심리상담센터를 찾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높은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강용 원장은 “우울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을 7개, 심한 경우는 10개씩 다닌다”면서 “요즘에는 유치원생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 5, 6세 어린아이들도 스트레스로 우울 증상을 보이곤 한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과 강북 지역에 있는 소아정신과 수도 차이가 컸다. 지역별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등록된 소아정신과 수를 비교해본 결과, 강남구에는 25곳이나 되는 소아정신과가 있었으나 강북구엔 단 1곳밖에 없었다. 서초구는 10곳, 송파구엔 9곳의 소아정신과가 있었지만 동대문구는 3곳, 구로구에는 2곳이었다. 물론 소아정신질환까지 신경 쓸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도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2월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5000원으로 고등학생 평균 사교육비인 21만8000원보다 높았다. 또한 사교육 참여율도 초등학생이 86.8%로 중학생(72.2%)과 고등학생(52.8%)을 앞섰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사교육을 받는 셈이었다. 이에 학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은 강남권의 경우 사교육 참여율은 100%라고 입을 모았다.

대치동에 사는 김소영(가명·42) 씨도 8세 아들에게 7개의 학원을 보낸다고 했다.

“수학·영어·논술·국어·첼로·미술 등 학원 7개는 기본이죠. 이곳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7, 8개의 학원을 다니는 것 같아요. 제 아들은 많이 다니는 편도 아니죠.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13곳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사교육 과열, 생후 18개월부터 학원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오성희(가명·40) 씨도 “아이가 8개의 학원에 다닌다”면서 “유명 학원의 경우 정원보다 접수자가 많아 1, 2년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소영 씨는 둘째 아들을 유명 논술학원에 보내려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학원 대기자 명단에 태명을 올리기도 했다.

“태명을 올린 덕에 아이가 18개월 때부터 논술학원에 다닐 수 있었어요. 그 학원은 엄마와 같이 배우는 클래스가 유명하거든요.”

최근에는 초등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국제중학교 열풍이 불어 저학년 때부터 국제중 입시반을 보내곤 한단다. 초등학생 특목고 입시반도 있다. 대치동에 사는 한 학부모는 “방학 시즌이 되면 유명 학원의 특강을 수강하려고 잠시 동안 이곳 오피스텔 등으로 이사 오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학원 다니기를 힘들어하진 않는지 물었다. 오성희 씨는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학원 다니는 데 훈련이 돼 있어서 그런지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공부 욕심이 많아 본인이 원해서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학원을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학원 다니는 게 재미있느냐고 묻자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치동에 사는 초등학생 김가현(11) 양도 학원 다니기가 버겁다고 했다.

“아홉 살 때 학원 7개를 다녔는데 매일 11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어요. 숙제를 다 하고 난 뒤 새벽 2시 반에 잘 때도 있었고요. 학원을 왜 다니는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짜증나요. 근데 엄마는 다른 애들도 다니니까 그냥 다니라고 하세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4월 14~27일 전국 초등학생 5~6학년 14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생활실태와 의식조사’에서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학원 다니기(44.8%)’가 1위로 꼽혔다.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는 칸에는 “엄마 학원이 힘들어요. 끊어주세요, 제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쌓여요” “요새 쉴 시간이 별로 없어 우울하고 짜증나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90% 이상은 부모의 책임

하지만 실제 몇몇 부모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듯했다. 8세 자녀를 둔 대치동의 한 학부모는 “아이의 반에 우울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2명 있는데, 그 아이들 때문에 괜히 잘하는 우리 아이가 영향을 받진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학부모는 “요즘같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좋은 인성까지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모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동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원을 다니기 싫고 힘들어도 “아빠가 열심히 돈 버는 건 ○○를 위해서야” “학원 열심히 다니는 ○○가 정말 예쁘다” “○○야, 꼭 1등 해야 해”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속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세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린아이가 ‘싫다’는 말을 안 하고 엄마 말을 무조건 다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아무런 저항을 안 한다면 그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하기 싫다’는 말을 안 하는 걸 암묵적 동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청소년의 경우 부모와 친구의 역할이 각각 30%고 나머지 40%는 본인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어린아이는 부모의 역할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면 아이들의 힘든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

아이의 자주성 육성도 중요하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대다수 아이들은 자주성이 약하다”면서 “어릴 때부터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하는 법’도 달리해야 한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거나 우울한 증상을 보일 땐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니?’라고 물으며 아이의 상황을 헤아려주는 게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에게 지나친 학업 부담을 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신의진 교수는 “보통 아이들은 만 11세 이상이 돼야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는데, 많은 엄마들이 이 사실을 간과한 채 어린아이들에게 지나친 학업 부담을 주곤 한다”면서 “어린아이일수록 최대한 천천히 하는 학습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파구 방이동의 모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김경숙(가명·50) 씨도 부모들부터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대학교’라는 종교에 미쳐 있는 광신도들 같아요.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무한입시경쟁에 들어갑니다. 부모의 교육열과 욕심에 멍 드는 건 아이들뿐이에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그렇지 않고선 우리 아이들의 미래엔 희망이 없어요.”

201108호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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