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소설가 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새해 프롤로그 

단순한 삶으로의 긴 여정 일상의 복잡한 나로부터 진정한 나를 찾는 길 

내가 파리에서 낡은 르노 자동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달려 브르타뉴 해변에 닿은 것은 2년 전 봄, 4월 초였다. 센 강변의 산책길에는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버들가지마다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날의 목적지는 생 말로. 영불해협에서도 파도가 드높기로 명성이 자자한 항구였다. 해안선을 따라 침목(枕木)이 끝없이 대열해 있는 이색적인 풍경은 북대서양에서 몰려오는 험난한 물결 때문이었다. 듣던 대로, 도착하니 봄인데도 겨울바람이 거셌다.

그때 내가 왜 생 말로에 가게 되었는지, 고백하자면 이렇다. 파리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집 옆에 장이 섰다. 나는 주로 야채와 과일, 허브, 꿀, 생선들 앞에 서 있곤 했다. 생선가게에는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파리사람들에게는 새벽에 직송해온 싱싱한 생선을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생선가게 이름이 생 말로였다. 나는 주로 홍합이나 대합, 생 대구를 즐겨 샀다. 생 말로에서는 혈색 좋은 형제 부부가 우렁차게 주문을 받아 외치며 생선을 팔았다. 그들이 외치는 건강한 삶의 외침 때문이었을까. 그들이 묻혀온 바다 냄새 때문일까.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생 말로를 향해 달려갔다.

타지 또는 타국에서 한 시절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살아온 삶의 규모와 방식을 지극히 단순화시킨다는 것을 뜻했다. 마치 꼭 붙는 의복처럼 불필요한 공간을 거느리지 않았다. 매사에 긴장했고, 절제했고, 검소했다. 그리고 언제든 하루쯤 낯선 곳으로 떠날 생각을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 말로 해변에서 바다와 마주하고 서니, 가슴이 툭 트이는 것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심호흡했다. 코끝을 감도는 공기가 차가웠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601호 (2015.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