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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특별기획 | 안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달라지는 노동 환경 

김용균의 죽음이 쏘아 올린 안전 경각심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새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초래한 경영책임자 처벌 가능한 법안 시행
징역·벌금·징벌적 손해배상 부과,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은 1년 동안 공개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통과 소식을 접한 뒤,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앞줄 가운데)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눈물을 흘렸다. / 사진:연합뉴스
"김용균은 ‘구미에서 나고 자라 발전소 하청업체에 취업했다가 석 달 만에 기계에 끼여 죽은, 누구네 외아들 스물네 살 청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일하다 죽는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모두의 이름이기도 하다.”

국선변호사 정혜윤은 책 [이름이 법이 될 때]에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말했다.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이송 작업을 하던 25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사회적 비탄과 분노가 일었고, 국회는 산업 현장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김용균법’으로 지칭되는 이 법은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로 3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또 터졌다. 이에 정치권은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규제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추진했다. 중대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일컫는다. 이 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법안들이 현실화됐음에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021년 12월 10일 김용균씨 사망 3주기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미안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이 마련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취약 노동자들의 산업현장 개선은 여전히 더디고 부족하다”며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2022년 처음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더 강화된 중대재해처벌법


▎2021년 6월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폐허가 된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 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의 기원은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청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8월 26일 김 이사장은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렸다. 채 1달도 되지 않아 동의자 10만 명을 돌파하자 국회 차원에서 입법이 논의됐고, 2021년 1월 8일 의결됐다.

정부에서도 고용노동부는 2021년 7월 13일 산업재해 감축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추진하는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안전보건감독기획과, 산재예방지원과, 건설산재예방정책과, 중대산업재해감독과, 직업건강증진팀이 신설되고, 인력이 증원됐다.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중대재해 예방 및 감독을 위한 컨트롤타워로 기능한다. 이 차원에서 추진되는 법령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의무를 위반해 사망·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때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해당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수위를 명시한’ 대목에서 의의를 지닌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지정했을 뿐이라 사업주의 경우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시민재해는 대중교통수단이나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인명 사고를 일컫는다. 따라서 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법안은 중대산업재해라고 할 수 있다.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법안은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이 손해액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는 당연히 안전보건 확보의무가 부과된다. 여기에서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공공기관의 장(長)도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크게 4가지다.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재해발생시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중앙행정기관 등이 관계 법령에 따라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관계법령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이 그것이다.

2021년 11월 17일 중대산업재해감독과가 발간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에 따르면,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은 ‘근로자를 비롯한 모든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 스스로 유해하거나 위험한 요인을 파악해 제거·대체 및 통제 방안을 마련·이행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그 내용을 9가지로 적시했다.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의 설정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전담조직 설치 ▷유해·위험요인 확인, 개선 절차 마련, 점검 및 필요한 조치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 구비 및 유해·위험요인 개선에 필요한 예산 편성 및 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 수행 지원(권한과 예산, 평가 기준 마련 및 평가·관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전문인력 배치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청취 및 개선방안 마련, 이행 여부 점검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조치 매뉴얼 마련 및 조치 여부 점검 ▷도급, 용역, 위탁 시 산재예방 조치능력 및 기술에 관한 평가 기준·절차 및 관리비용·업무수행기관 관련 기준 마련, 이행 여부 점검 등이 그것이다. 소상공인을 제외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이행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작성해 5년간 보관해야 한다.

또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 책임자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총 20시간 내에서 교육 의무가 부과되고, 그 비용은 사업주 본인 부담이다. 교육 내용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 방안 ▷중대산업재해 원인분석과 재발 방지 방안 등을 포함한다. 교육 기관과 일정은 고용노동부에서 통보하고, 1회에 한해서 연기를 요청할 수 있다.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은 기업은 면책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이 확인돼 형이 확정된 경우, 법무부 장관 통보를 거쳐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이 공표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데 기여하고, 해당 기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공표의 명분이다. 소명을 거쳐 최종 확정되면 관보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1년간 게시된다. 주요 내용은 ▷해당 사업장 명칭 ▷중대산업재해 발생 일시와 장소 ▷중대사업재해를 입은 사람의 숫자 ▷중대산업재해의 내용과 그 원인(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위반사항 포함) 등이다.

단,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면책 조항이 존재한다. ‘기업이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아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인터뷰] 김영주 민주당 의원(前 고용노동부 장관) 긴급 인터뷰 - “중대재해처벌법은 최소한의 산재 예방책”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을 포함해 줄곧 산업재해 감축과 근로 감독 강화에 정책 주안점을 두고 일했다.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7년 8월 장관 임명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김 의원은 “산업재해부터 줄이고 싶다”고 말했다. 장관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아간 현장도 산업 재해가 발생했던 STX 조선소였다. 장관 퇴임 후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통과에 힘을 보탠 김 의원은 2022년 1월 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주 처벌 강화만으로는 산재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후 처벌 강화와 함께 사전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해마다 노동자 20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고, 부상자가 10만여 명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산재 발생의 원인 제공 및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돼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산재를 발생시킨 사업주가 직접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 책임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의원은 산재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일관되게 제안했다. 이는 2021년 7월 고용노동부 내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으로 일부 현실화됐다.

“기존 노동부 조직으로는 산재 발생의 구조적이고 근본적 문제 해결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노동부 산재 업무는 산재예방보상정책국 산하 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맡았는데, 외형적으로는 확대됐지만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는 수준에도 미달했다. 마침 노동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 전문행정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권고(2018년 7월)했고,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설립 검토에 합의(2019년 4월)했다. 아직 2020년 7월 발의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지만, 중간 과정으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만들어진 것은 일부 성과라고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계와 정의당 등에서는 “면책 조항이 만들어지고,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등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무조건 사업주와 경영주를 엄벌하고자 마련된 법이 아니다.”

반대로 대한상의나 경총 등 재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규제”, “가혹한 처벌”이라고 호소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매년 2000명 넘는 노동자가 산재,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노동 현실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업주와 경영주들의 자구적 노력에만 기대왔다. 이제는 경각심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안전은 형벌로 지킬 수 없다. 과도한 형벌은 새로운 안전기술 개발을 늦추는 등 부작용을 키우고 사각지대를 늘릴 수 있다. 안전 관련 ‘자치 영역’을 확대하고 존중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산재는 사후에 자체적으로 관리, 감독 등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경영계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후 경영계에서는 ‘처벌 대상과 수준을 완화해주면 산재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도입하겠다’는 등 여러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을 최소한의 예방책으로 받아들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경영계의 전향적인 노력을 기대한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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