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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스페셜] 윤석열-안철수로 돌아본 단일화의 역사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13대 대선 때 갈라섰던 김영삼·김대중, 각각 14·15대 때 당선
■ 2012년 18대 때 문재인-안철수, 단일화하고도 박근혜에 석패
■ [중앙일보] 조사 尹 40.2%·李 39.4%·安 9.4%... 1·2위 초접전
■ 사전투표(3월 4~5일) 직전 단일화 이뤄질 수 있을 거란 전망도


▎1997년 11월 3일 대선후보 단일화(DJP 연합) 서명식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악수하고 있다. DJP 연합에 성공한 두 사람은 뒤이어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도 연대하면서 이른바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을 성사시켰다. 중앙포토
금요일인 2월 25일 아침, [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 대선 D-12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이뤄졌을 경우 윤 후보 44.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41.1%로 나타났다. 오차범위(±3.1%p) 내의 접전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이뤄졌을 경우 안 후보 47.5%, 이 후보 33.7%로, 두 후보 간 격차는 오차범위 밖인 13.8%p 차이였다.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윤 후보 43.5%, 안 후보 47.9%로 안 후보가 4.4%p 앞섰다. 이 후보 등 진보 성향 응답자들이 안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 눈여겨볼 점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역선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날 기준, 대선이 12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1위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대부분 오차범위 이내다. 코로나19 급증에 따른 투표율, 막판 여권 지지층 결집 등 변수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는 격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일화는 3·9 대선 최대 이슈를 넘어, 선거판 전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가고 있다. 정치에서는 1+1=2가 아닌 1.5 내지 1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 1+1=2.5 내지 3이 될 수도 있다. 여야 모두 단일화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2년 11월 25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정몽문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DJP 연합 성공한 DJ, 4수 끝에 당선

단일화의 역사는 35년 전, 1987년 제13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선은 1노(盧) 3김(金) 구도였는데, 이 가운데 양김 그러니까 김영삼(YS)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DJ) 후보는 민주화 동지였다. 그러나 둘은 끝내 단일화에 실패했고, 양김의 분열을 틈타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득표율은 노태우 36.64%,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 야권은 과반 득표에 성공하고도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야권 지지자 사이에서는 “경기에서는 이기고 승부에서는 졌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는 민정·민주·공화당의 합체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1.96%를 얻어 33.82%에 그친 김대중 민주당 후보와 16.31%를 득표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영삼 후보는 대선 근 3년 전인 1990년 1월 3당 합당을 주도하며 집권당 대선후보의 길을 열었다.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DJP 연합(김대중+김종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김종필 자민련 후보에게 내각제 개헌, 총리 임명 등 사실상의 공동정부를 약속하며 단일화를 이뤄냈다. DJP 연합 그리고 제3후보인 이인제 국민신당(19.2%) 후보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후보(40.3%)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38.7%)를 간신히 제치고 4수 만에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가 진행됐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해 노 후보를 최종 단일 후보로 결정했다.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하던 노·정 후보는 대선 24일 전인 11월 25일 마침내 단일 후보 선출에 성공했다. 본선에서 노 후보는 1997년에 이어 재수에 나선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득표율은 노무현 48.91%, 이회창 46.58%.


▎2012년 12월 9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에서 공동 유세를 펼치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 중앙포토
윤-안 난항 겪자 민주당이 안에 손 내밀어

2007년 제17대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보수 진영도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논의가 있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여야 모두 단일화에 실패한 가운데 득표율은 이명박 48.67%, 정동영 26.14%, 이회창 15.07% 순이었다. 1, 2위 간의 531만7708표 차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 표차로 기록돼 있다.

2012년 제18대 대선은 야권의 단일화 성공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리에는 실패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그해 9월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두 달 뒤인 11월 24일 사퇴 형식을 빌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본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48.02%에 그치는 바람에 51.55%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석패했다. 박 후보는 직선제 개선 이후 첫 번째 과반 득표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두 달 후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41.08%,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4.03%,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21.41% 순으로 1~3위를 기록했다. 문 후보는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대선이었음에도 득표율이 41.08%에 머물렀다. 당선인 기준으로 1987년 노태우, 1997년 김대중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낮은 득표율이었다.

단일화가 이번 대선의 블랙홀이라는 데 이견은 많지 않다. 대선전(戰) 전부터 양강 후보의 싸움이 ‘비호감 대결’로 전개되면서, 대선 막판까지 어느 쪽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조사 다자 대결에서 윤 후보 40.2%, 이 후보 39.4%, 안 후보 9.4%, 심상정 정의당 후보 3.3% 순이었다. 1, 2위 후보는 오차범위 내 초접전이었다.

과거에는 대선 3주 전쯤인 후보자 등록일 기준의 여론조사 결과가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선거가 채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 윤-안 후보 간 단일화가 안 후보의 ‘결렬 선언’ 이후 난항을 겪자 민주당에서 광범위한 정치 개혁을 통한 ‘다당제 연합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안 후보를 비롯해 심상정 후보,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 등에 손을 내밀었다.

2월 13일 윤 후보에 선제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했던 안 후보는 일주일 뒤인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윤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면서“오히려 윤 후보 뜻이라며 제1야당의 이런저런 사람들이 끼어들어 제 단일화 제안의 진정성을 폄하하고 왜곡시켜다”고 단일화 제안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2월 21일 충남 공주시의 한 도로변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홍보 현수막이 함께 걸려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송영길 “다당제 연합정치 하겠다” vs 석동현 “후보님, 삼고초려 하시라”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월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겠다”며 “중장기적, 국민 통합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권력 구조를 민주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민주당이 선거 막판 자세를 낮추며 제3지대 후보들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이재명 후보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당을 비롯해 다당제를 지향하는 세력을 일부라도 흡수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의 ‘다당제 연합정치’ 제안에는 윤-안 후보 단일화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그렇다면 윤-안 후보 단일화는 완전히 꺼진 불씨일까. 윤석열 후보 선대본부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투표용지 인쇄일이 28일이니까 그 전에 단일화가 이뤄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경우에 따라 사전투표(3월 4~5일) 직전에 단일화 담판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석동현 국민의힘 상임대외협력특보는 2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이 호소해다. “오늘 밤이라도 후보님께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댁으로 찾아가시라. 삼고초려 하시라.”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낸 석 특보는 윤 후보와는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40년 지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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