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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감독 벤투의 베스트 3 vs 워스트 3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 “전술적 유연성 떨어진다”는 부임 초기 평가 극복
■ 4년 갈고 닦은 조직력…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확정


▎2018년 8월 2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파울루 벤투(52·Paulo Bento) 감독은 취임 후 42경기 28승 10무 4패로 65%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지으며 명실상부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사진은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29·토트넘 홋스퍼)과 기자회견 중인 모습. 사진 KFA
드디어 승리했다. 상대는 2011년 1월 이후 11년 동안 잡아내지 못한 이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1년간 이란과의 7경기에서 3무 4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쥐고 있었다.

무승의 고리를 끊어낸 이는 4년째 감독을 맡고 있는 파울루 벤투(52)다. 지난 3월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홈 9차전에서 6만4375명 만원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2대 0 완승을 하며 ‘아시아의 호랑이’가 되살아났음을 보여줬다.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7위 등 눈부신 성과를 끌어내고 있는 벤투 감독이다. 하지만 부임 초엔 전술의 경직, 유연하지 못한 선수 선발 등을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월드컵 최종 예선의 최종 경기를 남겨둔 지금, 희로애락이 서려 있는 벤투 감독의 ‘Best(베스트)’ 세 경기와 ‘Worst(워스트)’ 세 경기를 선정해봤다.


▎2019년 1월 25일 아시안컵 8강전에서 심판에게 항의 중인 벤투 감독. 연합뉴스
Worst ①첫 패배 기록한 2019 아시안컵 8강전

벤투 감독은 2019년 1월 아시안컵 8강전에서 만난 카타르에 첫 패배를 기록했다. 당시 결과는 0대 1, 패배 원인은 컨디션 조절 실패로 인한 전술 가동 실패였다. 벤투 감독의 전술은 후방 진영에서 공을 소유하고 패스를 통해 풀어나가며 공격을 전개하는 ‘후방 빌드업’을 중시한다.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공격 기회를 가져가겠다는 계산이 담겨있다.

발목을 잡은 건 이전 라운드에서의 연장전 혈투로 인한 체력 소모였다. 후방 빌드업 전술의 특성상 양쪽 측면 수비수가 공수 양면에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줘야 했으나, 당시 출전한 김진수(29·전북 현대 모터스)와 이용(35·전북 현대 모터스) 모두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명실상부한 에이스인 손흥민(29·토트넘 홋스퍼)의 발끝도 이날은 침묵했다. 손흥민은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침투 대신 패스의 중심점으로 동료 선수들의 공격 작업을 연계해주는 것에 주력했다. 이에 체력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날쌘 스프린트는 물론 득점포 가동에도 실패했다.

벤투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경기를 컨트롤하고 싶었으나 상대의 조직력이 강했다”고 인정했다. 반면 “향후에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혀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9년 3월 26일 콜롬비아를 잡아낸 뒤 상대 감독인 카를로스 케이로스(69)와 인사하는 벤투 감독. 두 감독 모두 포르투갈 국적자다. 연합뉴스
Best ①강호 콜롬비아 잡아낸 벤투, 첫 골 신고한 손흥민

2019년 아시안컵에서 아쉬운 8강 성적표를 받아든 벤투호, 같은 해 3월 A매치 기간 상대는 볼리비아와 콜롬비아로 결정됐다. 특히 콜롬비아는 2022년 지금도 FIFA 랭킹 19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강팀이다.

일본을 1대 0으로 잡아낸 뒤 우리나라와 맞선 콜롬비아, 경기는 손흥민의 선제골과 이재성(29·마인츠05)의 추가 골에 힘입어 2대 1로 마무리됐다. 콜롬비아는 루이스 디아스(25·리버풀)의 동점 골로 추격에 나섰으나 우리나라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경기가 베스트 매치인 것은 손흥민이 벤투 체제에서 첫 득점을 기록한 경기여서다. 손흥민은 벤투 감독 부임 후 특유의 빠른 스프린트 대신 공격 작업을 풀어나가는 전개 과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득점포가 터지지 않으며 벤투 감독의 전술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반 6분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기록한 손흥민은 여러 차례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다 전반 15분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벤투 감독과 팬들의 걱정을 한 번에 씻어내는 신고식이었다.

수비진의 안정화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였다. 김영권과 김민재(25·페네르바체) 조합이 안정적인 수비력을 자랑했다. 이 듀오는 계속해서 합을 맞추며 현재 대표팀 주전 수비수 조합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3월 25일 한·일전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벤투 감독. 이날 대표팀은 0대 3으로 완패했다. 연합뉴스
Worst ②1.5군 냈다기엔 지나친 대패…‘요코하마 대참사’

한·일전은 스포츠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 관계 중 하나다. 한·일 간의 역사적 관계가 맞물리면서 양국 국민 모두 ‘무조건 승리’를 외치며 응원에 나선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어렵게 성사된 2021년 3월 한·일전, 우리나라는 경기 결과와 매너에서 모두 패배했다.

이날 벤투 감독이 꺼내 든 대형은 3-4-3 전형으로, 본인이 즐겨 사용하던 4-2-3-1 전술과는 다른 형태였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선수 차출 문제로 중용 받지 못하던 선수들의 실험이 함께 이뤄졌다. ‘슛돌이 키즈’ 이강인(21·RCD 마요르카)이 가짜 공격수 역할을 맡았으며, 박지수(27·김천 상무)와 원두재(24·울산 현대)도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다.

사실상 1.5군이 출전하면서 쉬운 승리를 점치기 어려웠지만, 경기는 예측 이상으로 일본의 우세였다. 전반 15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한 뒤, 26분에 재차 추가 골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무너졌다. 뛰어난 공격적 재능을 가진 이강인은 일본의 중원과 수비진에게 지워지다시피 했다. 팀이 흔들릴 때 피치 위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베테랑도 김영권(32·울산 현대)과 조현우(30·울산 현대)뿐이었다.

우리나라의 거친 플레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이동준(25·헤르타 베를린)이 팔을 휘둘러 상대 수비수 토미야스 타케히로(23·아스날)의 얼굴을 가격했다. 토미야스의 앞니가 빠지면서 출혈이 발생해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0대 3으로 경기가 마무리되면서 ‘요코하마 대참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벤투 감독의 선수 기용과 전술 모두에서 실책이 겹치면서 한·일전 대패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온 데에 대한 날선 비판이었다.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에 입장하는 대표팀.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m로 고산지대에 속해 선수들의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KFA 제공
Worst ③죽음의 원정길,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 승리는 다음으로

8전 3무 5패.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거둔 성적이다.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인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고도 1273m에 위치해 있다. 수용인원은 7만8000명이다. 남성만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는 이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원정팀에게는 고산지대에서 8만여 명의 남성 원정 팬이 내지르는 격렬한 트래시 토크(경기 전후 상대를 도발하는 말)를 견디며 경기를 펼쳐야 하는 셈이다.

2021년 10월 벤투 감독도 죽음의 원정길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경기 전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어보았지만, 1대 1 무승부로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다.

대표팀은 이란 특유의 내려앉아 수비를 강화하는 전술에 맞서 전반전을 잘 풀어나갔다. 후반전엔 이란이 공격에 나서는 틈을 파고들어 손흥민이 선제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발목을 잡은 것은 고산지대로 인한 체력 저하 문제였다. 승기를 잡은 시점에서 빠르게 교체카드를 활용해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었으나, 벤투 감독의 첫 교체카드는 후반 25분이 돼서야 나왔다. 어수선해진 후반 21분, 결국 상대에게 동점골을 내주면서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이란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점은 성과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 자신의 판단이 아쉬운 타이밍과 겹치며 승리를 놓친 것엔 분명한 복기가 필요했다.


▎2022년 2월 1일 시리아전에서 승리하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벤투 감독이 선수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Best ②월드컵 진출 조기에 확정 지은 시리아전

2022년 2월 시리아전은 월드컵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경기 전부터 코로나19 악재가 터지며 대표팀은 혼란을 겪었다. 경기가 치러지는 아랍에미리트 입국 과정에서 주전 수비수인 홍철(31·대구 FC)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전력에 누수가 발생했다. 천만다행으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선수단 전원이 매일 신속항원검사와 유전자 증폭(PCR)검사를 실시하며 에너지를 소모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처지는 시리아였지만 우리 대표팀은 전반전을 어렵게 풀어나갔다. 벤투 감독은 4-4-2 형태로 전술에 변주를 주었지만 시리아의 압박이 거셌다. 결국 벤투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권창훈(27·김천 상무)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김진수의 선제골로 기세를 가져온 대표팀은 교체로 투입된 권창훈의 중거리 슛이 골로 연결되며 확실한 승기를 가져왔다. 경기는 2대 0으로 마무리되며 대표팀은 월드컵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지었다.

이 경기에서 벤투 감독의 용병술이 빛났다. 전반전에 고전했던 점을 즉각 반영해 권창훈을 투입한 용병술이 그대로 적중했다. 그간 벤투 감독이 약점으로 지적받던 전술적 유연성 부재를 정면으로 돌파해낸 셈이다.


▎2022년 3월 24일 숙적 이란을 잡아내며 조 1위로 한 발짝 다가선 벤투 감독. 인터뷰 중인 손흥민 뒤로 벤투 감독이 김민재(25·페네르바체)를 다독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Best ③숙적 이란 홈그라운드에서 잡아내다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벤투 감독은 남은 두 경기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숙적’ 이란, 이전 월드컵 예선에서 발목을 잡아 왔던 만큼 경기에 임하는 벤투 감독과 대표팀 모두 남다른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2022년 3월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경기는 2대 0의 귀중한 승리를 우리나라가 가져왔다. 탐색전이 끝나자 대표팀이 경기의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중원에서도 이란 선수들을 압도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0대 0이 이어지던 전반전 추가시간 손흥민이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18분엔 수비수 김영권이 현란한 패스 연계를 마무리 짓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6만여 명이 모인 홈구장에서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준, ‘아름다운 밤’이었다.

벤투 감독의 경기 운영도 완성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부임 초기 문제로 지적받던 ▷늦은 교체 타이밍 ▷고착화된 전술 ▷고정된 선호 멤버 모두 개선된 모습을 꾸준히 보이고 있다. 특히 선호하는 선수 폭이 좁다는 지적은 되려 선수들이 오랜 기간 발을 맞추고 높은 조직력을 보여주면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대표팀은 이란전 무·패 징크스를 말끔히 씻어냈다. 더불어 11년 2개월 만에 승리를 가져오면서 월드컵 최종예선 조 1위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대표팀은 두바이로 이동해 3월 29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마지막 경기에 나선다.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과의 승점 차가 1점에 불과한 만큼 조 1위를 확정 짓기 위해선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벤투 감독과 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는 22시 45분 시작한다.

-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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