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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7) 청계산자락 서울대공원 치유의 숲에서 

 

참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았다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 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말처럼 친구는 위대했다.

서울대공원 휴양림에서 ‘고딩 친구’들과 만났다. 대머리 민둥산, 심술 꼰대, 시꺼먼스, 홀쭉이, 배불뚝이 등등 오만가지 군상에 희끗희끗 반백의 머리를 하였지만, ‘그놈’들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단박에 친구임을 알아보고, 찐한 사랑의 레이저를 발사하면서 깊은 포옹과 악수를 했다. 한 번 동창은 영원한 친구이자, 인생 동반자로 40여 년의 긴 세월이 무색하여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쳤다.

77억, 지구촌의 많은 사람 중에 40년이 흐른 뒤, 이렇게 허물없이 반갑게 맞이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한바탕 왁자지껄 웃음보따리가 청계산 산자락을 메아리쳤다.

30여 년의 노하우와 경험에서 묻어나는 오늘의 특별 가이드, 친구 선생님의 호기심 있는 한마디에 17살 철부지들은 모두 집중했다.

“명당이란 우리를 잉태하고 품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유래했는데, 바로 이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 최고의 배산임수의 명당입니다. 리프트에서 그 멋진 명당을 즐겨 보세요.”

청계산과 관악산이 좌청룡 우백호로 중요 부위를 든든하게 에워싸고, 그 한가운데 백옥같이 샘 솟는 맑은 호수…. 왠지 모르게 아늑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그런 태곳적 따뜻하고 아늑한 그곳을 못 잊어,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자, 백만 송이 장미꽃이 로맨틱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옛날 동양에서는 모란과 작약을 최고의 꽃으로 꼽았는데, 이란 등 중동 지방이 원산지인 장미꽃이 서양에서 들어오면서 여왕 자리를 장미꽃에 내어 주게 되었고, 장미꽃은 한국 토양에서는 영양 과다로 스스로 자생할 수 없어, 토종 찔레꽃에 접붙인 개량종으로 수백 종류의 장미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장미꽃을 안개꽃에 감싸서 주는 것은 열정적 사랑의 장미꽃과 순수한 사랑의 안개꽃의 만남으로, 흰색이 죽음을 상징,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맹세의 징표라고 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면서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하는 것은, 간절히 나를 받아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꽃들은 녹색과 노란색을 가장 쉽게 표현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벌이 날아와야 암수가 만나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더 더 더 붉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치장하고 경쟁하며 벌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꽃은 붉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가이드의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현란한 말의 국적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웃음이 절로 났고, 사랑스러운 여러 꽃이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배꼽 빠지는 가이드님의 유머스런 설명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완전 땅에 누워 사는 소나무를 설명하면서는 4전 5기의 홍수환 권투 선수를 소환했다.

“수십 년 전 홍수환과 카라스키의 세기의 대결에서, 카라스키는 그동안 무패 전적에 대부분 KO 승을 거둔 천하무적의 선수로 홍수환은 적수가 되지 않아, 한 라운드에 3번이나 다운이 되었는데, 다운될 때마다 30초씩 벌러덩 링 위에 드러누워 휴식과 힘을 비축, 마침내 때가 오자 지친 카라스키를 한 번에 몰아붙여 전설적인 K.O 신화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고로 지치고 힘들면, 오래 살고 싶으면 드러누워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사람 인(人)에 나무 목(木)을 합친 글자가, 휴식할 휴(休)자이고 사람 인(人)에 뫼 산(山)을 합친 글자가, 신선 선(仙)자로, 산은 우리에게 휴식과 힐링은 물론 생각하는 신선 도인을 만듭니다. 앞으로 더욱 산을 사랑하고 오르세요.”

“왕의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는 것은, 소나무 밑에서 보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고, 소나무 껍질은 용의 비늘처럼 보여, 죽어서도 권력 명예를 간직하고픈 욕망의 산물로….옛날에는 왕 무덤만 소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부와 권력은 모든 인간이 갖고 싶은 최고 욕망으로 그 두 개를 모두 가질 수 없도록, 즉 한 사람에게 모든 복을 주지 않고, 고루고루 나누어 가지도록 신은 인간들을 감시하고 있는데, 두 개의 욕망을 다 가지려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대부분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로 급하게 모셔 간다고 합니다. 즉, 항상 많이 가질수록, 복이 터질수록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느티나무의 유래는 느티나무가 약 20년은 자라야 나무처럼 보여, 느티나무라 부르게 되었고, 그 늦음의 미학으로 보통 1000년을 산다고 합니다.“

“벚나무는, 일본에는 토종 벚나무가 없고, 진드기 등에게 모든 것을 내주기에 겨우 100년 정도로 비교적 짧은 삶을 살고, 인간의 지능은 아무리 노력해도 4% 정도만 향상되지만 육체는 24%가 향상될 수 있기에, 꾸준히 운동하고 절제하면 건강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를 한 친구 선생님은 시설팀장으로, 분야가 전혀 다른데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 잠 못 이루고 철저한 준비를 해준 덕택에 힐링은 물론 많은 것을 얻어 가 오래도록 배부른 소풍이 되었다.

그렇게 유쾌한 한바탕 웃음으로 휴양림에 도착하여 대자연을 걷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17살로 되돌아가 격의 없는 웃음 속에 윷놀이하고, 배불리 먹고, 이야기하고, 행복한 미소 속에 헤어졌다.

참 오랜만에,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았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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