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첩 적용 대상, 적국 아닌 외국으로 확대해야"동방명주가 발각될 무렵 미국에서도 중국 비밀경찰이 발각됐다. 당시 미국의 대응은 단호했다. 뉴욕에서 중국 비밀경찰이 발각된 직후인 지난해 4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인 남성 2명을 비밀경찰 운영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 미국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은 최대 2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처럼 간첩죄 처벌 대상을 '적국을 위한 행위'로 한정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미국 연방법은 우리나라 형법과 달리 처벌 대상을 '외국'으로 폭넓게 명시한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곧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단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미 연방법 제793조는 "미국의 피해 또는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국방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군사 장비·시설·연구소 및 전시·비상사태 시 대통령이 지정한 통제 장소에 관한 정보에 접근·입수하는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다.이뿐만이 아니다. 미 연방법 제794조는 "미국의 손해 또는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외국 정부 또는 외국 파벌·정당·군대에 국방 관련 자료·정보를 전달·전송하거나 시도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외국을 위한 행위'를 엄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KF-21 기밀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인도네시아 국적자와 같은 '산업 스파이'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도 마련돼 있다. 미 연방법 798조는 "기밀정보를 고의로 권한 없는 사람에게 제공·전달·전송, 나아가 대외 공개하거나 미국의 안전·국익에 해를 끼치는 방식 또는 미국에 해를 끼치는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는 벌금이나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기술 유출 혐의를 받는 인도네시아 국적자는 최소 10년은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이처럼 간첩 행위를 폭넓게 규정한 조항은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프랑스도 미국처럼 처벌 대상을 특정 국가가 아닌 '외국'으로 명시한다. "국가기밀을 타국 또는 그 중개인에게 전달하는 행위,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해 불이익을 초래하고 타국의 이익을 위해 국가기밀을 권한 없는 자에게 전달하거나 이를 공연히 공표하는 행위에 한해 1년 이상의 형에 처한다"고 명시한 독일 형법 제94조가 대표적이다.프랑스 현행법도 이와 비슷하다. 프랑스 형법 제411-2조는 "외국 정부, 외국의 단체, 외국의 지배하에 있는 단체, 해당 단체의 요원에게 프랑스군 부대 또는 국토의 전부·일부를 인도하는 경우 무기금고형 및 75만 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이 밖에도 프랑스 형법 411-6조는 "외국 정부, 외국에 속하거나 외국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나 조직, 그 요원에 대해 정보, 기법, 물품, 문서, 정보처리 데이터·자료를 제공하거나 이를 입수하는 데 도움을 줄 경우, 최대 15년 금고형 및 22만5000 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시급"간첩법을 개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대안으로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을 통해 안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시행하고 있다.미국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의 경우 외국대리인으로 선임된 자는 10일 이내에 등록서류를 미국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외국대리인은활동기간 중 외국 의뢰인과 협의한 수입과 지출을 6개월마다 미 법무부에 제출해야 한다.호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이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Foreign Influence Transparency Scheme)'이란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은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인사들을 외국인 대리인으로 등록하게 하고, 호주 내정에 간섭할 경우 형사처벌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주는 '영향력 행사'의 정의를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자금 지원 활동도 포함하는 등 법안을 비교적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영국은 '외국의 영향력 등록제(Foreign Influence Registration Scheme)'라는 이름으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시행하고 있다. 특이점은 안보 및 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영국 내무부 장관이 특정 외국 세력을 등록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이 제정될 경우 외국 정부가 외국대리인에게 전달한 지시·명령·자금 내역을 알 수 있게 된다. 국내 정책에 개입하거나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영향력 공작 단서를 비교적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등록 의무를 불이행하거나 자료 누락·허위 기재와 같이 불성실하게 등록할 경우 처벌할 수 있어 비밀경찰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국회에선 아직까지간첩법의 허점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해 6월에 발의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유일하다. 제정안은 외국대리인이 되려는 사람은 외국대리인의 성명, 외국당사자의 성명, 외국당사자로부터 수령한 금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기재한 등록 서류를 제출하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 장관에게 등록하도록 했다.하지만 이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돼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안에 입법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