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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외국대리인등록법 필요성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동방명주 등 중국의 대한(對韓) 공작 활동에 대처할 법률 없어"
"미국·독일·프랑스 등 해외 입법 사례 참고해 간첩법 개정해야"


▎2022년 12월 31일 서울 송파구 소재 중식당 '동방명주' 전경. 사진 김태욱 기자
2022년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국내 거점이라는 의혹을 받았던 서울의 중식당 '동방명주' 대표와 아내가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월 초 이 업소 대표와 아내를 식품위생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초 문제가 됐던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의 사실 여부에 대해선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간첩법(형법 제98조)은 처벌 대상의 '적국'은 북한으로 한정돼 있다. 북한 이외 나라의 간첩 활동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처럼 정보기관이 발 빠르게 움직여도 막상 법 집행에는 제약이 따른다. 국회에서도 간첩법 개정에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사법부의 반대로 동력을 잃은 상태다. 법원행정처는 우방국·동맹국,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적국·준적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즉, 간첩법이 개정될 경우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될 것을 우려한다는 이야기다.

사법부의 이 같은 우려는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대가 복잡다변화함에 따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대상도 법원행정처의 의견처럼 '지나치게 확장'됐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국적자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아 우리 당국이 수사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KF-21을 공동 개발 중인 파트너국이다. 이처럼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은 우방과 적국의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는다.

간첩죄에 대한 법원 판단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판례상 간첩죄가 성립하려면 간첩활동의 대상이 국가기밀(군사상 기밀)이어야 하고, 간첩 행위는 탐지와 수집으로 제한돼 있다. 국가기밀을 외국에 유출하는 안보 위해 행위가 적발돼도 법 적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국은 형량이 낮은 군사기밀보호법 또는 형법(외교기밀·공무상 비밀누설)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 입법사례를 참고해 간첩죄 적용 대상을 현행 '적국'에서 '외국의 단체'로 확대하고, 간첩의 행위 태양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 등으로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간첩 적용 대상, 적국 아닌 외국으로 확대해야"

동방명주가 발각될 무렵 미국에서도 중국 비밀경찰이 발각됐다. 당시 미국의 대응은 단호했다. 뉴욕에서 중국 비밀경찰이 발각된 직후인 지난해 4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인 남성 2명을 비밀경찰 운영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 미국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은 최대 2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처럼 간첩죄 처벌 대상을 '적국을 위한 행위'로 한정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미국 연방법은 우리나라 형법과 달리 처벌 대상을 '외국'으로 폭넓게 명시한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곧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단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미 연방법 제793조는 "미국의 피해 또는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국방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군사 장비·시설·연구소 및 전시·비상사태 시 대통령이 지정한 통제 장소에 관한 정보에 접근·입수하는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연방법 제794조는 "미국의 손해 또는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의도나 이유를 가지고 외국 정부 또는 외국 파벌·정당·군대에 국방 관련 자료·정보를 전달·전송하거나 시도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외국을 위한 행위'를 엄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F-21 기밀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인도네시아 국적자와 같은 '산업 스파이'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도 마련돼 있다. 미 연방법 798조는 "기밀정보를 고의로 권한 없는 사람에게 제공·전달·전송, 나아가 대외 공개하거나 미국의 안전·국익에 해를 끼치는 방식 또는 미국에 해를 끼치는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는 벌금이나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기술 유출 혐의를 받는 인도네시아 국적자는 최소 10년은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간첩 행위를 폭넓게 규정한 조항은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프랑스도 미국처럼 처벌 대상을 특정 국가가 아닌 '외국'으로 명시한다. "국가기밀을 타국 또는 그 중개인에게 전달하는 행위,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해 불이익을 초래하고 타국의 이익을 위해 국가기밀을 권한 없는 자에게 전달하거나 이를 공연히 공표하는 행위에 한해 1년 이상의 형에 처한다"고 명시한 독일 형법 제94조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현행법도 이와 비슷하다. 프랑스 형법 제411-2조는 "외국 정부, 외국의 단체, 외국의 지배하에 있는 단체, 해당 단체의 요원에게 프랑스군 부대 또는 국토의 전부·일부를 인도하는 경우 무기금고형 및 75만 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이 밖에도 프랑스 형법 411-6조는 "외국 정부, 외국에 속하거나 외국의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나 조직, 그 요원에 대해 정보, 기법, 물품, 문서, 정보처리 데이터·자료를 제공하거나 이를 입수하는 데 도움을 줄 경우, 최대 15년 금고형 및 22만5000 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시급"

간첩법을 개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대안으로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을 통해 안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의 경우 외국대리인으로 선임된 자는 10일 이내에 등록서류를 미국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외국대리인은활동기간 중 외국 의뢰인과 협의한 수입과 지출을 6개월마다 미 법무부에 제출해야 한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이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Foreign Influence Transparency Scheme)'이란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은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인사들을 외국인 대리인으로 등록하게 하고, 호주 내정에 간섭할 경우 형사처벌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주는 '영향력 행사'의 정의를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자금 지원 활동도 포함하는 등 법안을 비교적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영국은 '외국의 영향력 등록제(Foreign Influence Registration Scheme)'라는 이름으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시행하고 있다. 특이점은 안보 및 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영국 내무부 장관이 특정 외국 세력을 등록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이 제정될 경우 외국 정부가 외국대리인에게 전달한 지시·명령·자금 내역을 알 수 있게 된다. 국내 정책에 개입하거나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영향력 공작 단서를 비교적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등록 의무를 불이행하거나 자료 누락·허위 기재와 같이 불성실하게 등록할 경우 처벌할 수 있어 비밀경찰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국회에선 아직까지간첩법의 허점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해 6월에 발의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유일하다. 제정안은 외국대리인이 되려는 사람은 외국대리인의 성명, 외국당사자의 성명, 외국당사자로부터 수령한 금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기재한 등록 서류를 제출하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 장관에게 등록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돼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안에 입법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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