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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尹 ‘민생토론회 시즌2’ 시들한 이유 

보따리 풀었지만 현실성 없어… 언론도 여론도 주식시장도 잠잠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총선 전 24차례, 후엔 2차례… ‘총선용이었나?’ 진정성 의심
관련법 개정 없으면 ‘공수표’… 여소야대 한계 속 尹 ‘마이웨이’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0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열린 26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제 민생토론회 시즌2를 시작합니다.” 지난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제25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가 열렸다.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 속에서 총선을 2주일 앞두고 멈춰선 지 49일 만에 재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24번의 민생토론회를 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현장의 의견을 청취해서 국가정책에 적극 반영해왔다. 두 차례 점검회의를 통해서 그 후속 조치도 다 챙겼다”고 말했다. 이날 주제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으로, 대리기사·배달원 등 근로자 70여 명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 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며 임기 중 가칭 ‘노동 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노동법원’ 설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이 지난 6월 20일에는 경북 경산시에서 26번째 민생토론회를 개최했다. 윤 대통령은 “3조4000억원 규모의 영일만 횡단고속도로 건설을 빠르게 추진하고, 경주에 3000억원 규모의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하고 있어?” 시즌2에서도 각 회차마다 대규모 개발정책이나 지역 숙원사업 등의 정책 발표가 나오고 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민생토론회 초기에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으며 취재 경쟁을 했던 언론들도 관심을 돌린 상황이다. 개발 보따리를 풀어도 주식시장에서는 단타 위주의 매매만 반짝거릴 뿐이다. 총선 패배 후 윤 대통령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모자랐다. 세심하지 못했다”며 심기일전해 다시 시작한 민생토론회가 왜 주목받지 못하는지 [월간중앙]이 짚어보았다.

주식시장에서도 ‘반짝 호재’ 그쳐


우선 현실성에 대한 지적이다. 대통령실은 26차례 민생토론회에서 굵직굵직한 정책 260여 개를 발표했는데 재건축·재개발, 각종 철도교통 추진, 지역별 개발 현안 해결 등 국토교통부 관할 사업이 많다. 하지만 모두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사업이라 현실화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민생토론회 내용을 총정리해 발표한 ‘교통 분야 3대 혁신’이 대표적이다. GTX의 지방 버전인 ‘x-TX(충청 CTX, 대구·경북 DTX 등)’ 확대, 수도권 광역교통 개선, 철도·도로 지하화 통합 개발 등이다. 모두 민자 유치 계획이지만, 수혜 대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정부 재원도 상당 부분 소요된다는 분석이다.

잘못된 해석으로 헛발질 대책이 나오기도 한다. 상속세 완화 추진이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국민들께서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 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속세를 깎아주면 총수일가가 주가를 낮추려 하지 않아 주식시장이 개선될 거라는 논리인데, 이는 잘못된 진단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대표적인 저평가 기업으로 꼽히는 금융권에선 정작 상속세 이슈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5~10년 주기로 상속세 개편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번엔 밸류업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엇박자도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월 공매도 재개’를 시사했지만, 대통령실이 불법 공매도 방지 시스템 구축 전에는 해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시장에 혼란이 일었다. 국회에 나와 공매도 금지의 부작용을 우려했던 금융위원장은 졸지에 말을 바꾸어야 했다. 현재 공매도 재개 시점은 내년 3월로 넘어간 상태다. 세수 감소 대책도 없이 덜컥 발표부터 해버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러니 주식시장에서도 ‘반짝 호재’에 그치고 만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주인 금융주는 대통령 발언 이후 급등했다가 이틀 사이 그만큼 주저앉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의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에서다.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 등 발표 때마다 반짝 올랐던 건설업종 주가도 용두사미 정책에 타격을 입었다. 최근 진행된 26차 민생토론회의 수혜주 ‘코오롱글로벌’ 주가도 마찬가지다. 포항영일신항만의 지분 15.34%를 보유한 코오롱글로벌은 경북 포항 영일만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에 이어 ‘3조4000억원 규모의 영일만 횡단고속도로 건설’ 호재까지 만나 주가가 6월 20일 상한가(1만5740원)를 쳤지만 7월 15일 현재는 발표 이전 수준(1만2000원)으로 내려앉았다. “주식시장엔 단타족만 늘었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이같이 정책 테마주가 늘면서 이른바 ‘빚투’(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고) 규모도 20조원을 넘어섰다.

지역 편향에 횟수 줄어 ‘진정성’ 의구심


▎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 (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자 경호원들이 제지하고 있다.
총선 앞뒤로 진행 빈도가 달라지면서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민생토론회는 총선을 앞두고 12주 동안 24차례 열렸다. 그러나 선거 후엔 달랐다. 4월 10일 총선이 끝나고도 한 달이 넘은 5월 14일에야 재개됐고, 26차 민생토론회가 열리는 데는 37일이 걸렸다. 총선 전에는 1주에 두 번씩 열던 민생토론회가 총선 후에는 한 달 넘어 열리는 셈이다. 게다가 총선 전에는 민생토론회에서 나왔던 정책들의 시행을 점검하는 회의를 열며 이를 다시 홍보했지만 총선 후에는 점검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민생토론회 = 총선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 재개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개최 지역도 편차가 커서 지자체에서는 불만이 많다. 민생토론회는 총 26차례 중 경기·인천에서 가장 많은 10차례가 열렸고, 서울·영남 각 5차례, 충청 3차례, 강원 2차례, 호남 1차례다. 호남에서는 전라남도 도청소재지인 무안에서만 1차례 진행됐고, 제주는 아직 진행된 바 없다. “오래 문제가 있던 지역을 찾아가 구체적인 해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입장과 달리 “대통령의 민생 행보가 ‘경부선 라인’에서만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는 청와대 출신이 출마한 성남(김은혜 홍보수석)과 용인(이원모 인사비서관)에서 두 번씩이나 민생토론회가 열리면서 ‘정치적 중립’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진정성이 의심되는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 1월 22일 5차 민생토론회는 서울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렸는데, 생방송 30분 전에 대통령 불참이 통보되면서 부랴부랴 국무조정실에서 주재에 나선 것. 이날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갈등이 고조된 시점이었는데, 윤 대통령이 감기를 이유로 불참했다. 당시 대통령실에서 언론사에 ‘노쇼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2월 1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열린 12차 민생토론회에서는 미래 과학 지원, R&D 예산 지원 정책을 밝히던 중 이른바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민생토론회에서 쏟아지는 정책들은 윤 정부의 건전재정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3월 국정과제를 제외하고 모든 재량지출을 10% 이상 줄이는 내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확정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확대 등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하면서 ‘건전재정’을 주창하는 가운데 ‘민생토론회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벌써부터 비판이 나오고 있다. 건전재정과 감세, 포퓰리즘이라는 상충되는 정책들이 낳을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여야 협치냐, 일방통행 마이웨이냐


▎1월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예정된 5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윤석열 대통령의 불참이 결정되자 관계자가 윤 대통령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동안 진행된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정책은 260개 남짓으로, 이 공약들을 다 합치면 ‘천지개벽’ ‘상전벽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의 ‘말로만 민생정책’은 개념부터 정립하라”고 쓴소리를 냈다. 신 명예교수는 “총선 때 24차례나 대통령 주재로 민생토론회를 했지만 왜 참패했을까. 민생 개념을 취약계층·소상공인·중소기업·청소년 지원으로 확 좁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물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사는 물론이고 인수위원회의 110대 과제, 지난해 신년사에도 ‘민생’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총선을 앞둔 올해 신년사에서 민생 현장 이야기가 나왔지만 금융·수출·국제수지·반도체·AI까지 끼워넣는 바람에 구체적 목표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를 전제로 했던 일방통행식, 돌출식 정책 추진을 버리고 당장 실현가능하거나 효율성이 큰 정책을 솎아 여야와 실질적인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최근 발표한 ‘노동약자보호법’이나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SMR 기술개발 등 원전 예산을 대폭 삭감한 바 있으며, ‘노동약자보호법’을 비판하며 ‘일하는사람기본법’을 발의한 상태다. “진정 민생을 위한다면 수시로 점검회의를 하고, 야당과 정책 논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윤 대통령의 성향상 중도층을 신경 쓰기보다는 절대층의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후에도 국책 과제를 낱낱이 강조하면서 “틀리지 않았지만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정부청사와 국회에서 일하기보다는 ‘전국 일주’식 민생토론회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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