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구루와 목민관 대화] 박상돈 천안시장과 이종원 호서대 부총장의 ‘천안 실리콘밸리’ 야망 

“‘국민 SNS’ 싸이월드 교훈 한국 첨단 빅 테크에 녹인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기업가 정신·경영학 지식·비즈니스 마인드 역내 200개 스타트업에 새겨”
■“천안은 세계적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요람… 10년 내 유니콘 2개 이상 육성”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천안흥타령춤축제에 53개국 춤 마니아 참가”


▎8월 1일 천안 도심의 랜드마크 타운홀전망대에서 대담을 나눈 이종원(왼쪽) 호서대 부총장과 박상돈 천안시장.
"우리는 항상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서 이야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뿐만 아니라 요트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2021년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전까지 미국 시티은행의 수석 투자전략가로 활동한 토비아스 레아코비치가 한 말이다. 이제는 금융 시장에서 빈부(貧富)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얘기할 때 종종 인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부의 격차와 불평등을 말할 때 ‘부자’와 ‘가난한 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언젠가 그 부자 위에 더 큰 부자(요트를 가진 자)가 나타났다.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통상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최상층 부자라는 제3의 변수까지 고려해야 부의 편중 추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토비아스 레아코비치의 통찰이다. 그는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국가 간의 불평등은 완화되겠지만, 국가 내의 불평등은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레아코비치의 표현은 대한민국의 산업 입지 추세에도 차용해 봄직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는 항상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뿐만 아니라 ‘충청권’이 있습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1980년대 이래 기업, 대학 등 인구 밀집 기관의 수도권 진출을 억제하는 등 중앙 집중을 막는 조항을 많이 담고 있다. 이에 기업은 이 규제를 피해 수도권과 맞닿은 비수도권인 충청권에 산업 입지를 조밀하게 조성하기 시작했다. 수도권 광역 교통망이 충청권으로 확산하면서 이동시간이 단축되는 등 수도권과 충청권은 동일한 산업권으로 묶이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공장과 학교는 충청권에 짓고, 인력은 수도권을 활용하는 새로운 유형의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이다. 충청권은 지리적 개념으로는 비수도권이지만 산업적 개념으로는 수도권에 수렴되고 있다. 이런 충청권의 이중적 지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벌여온 지역균형발전 시소게임에 새 변수로 등장했다.

“천안엔 있고, 판교엔 없는 것, 제조 공정 ”


천안시는 충청권의 달라진 위상과 역동성을 대표하는 도시의 하나다. 천안은 경부선, 장항선과 함께 천안아산역 KTX, SRT가 지나고, 경부고속도로 등 4개의 고속도로가 경유하면서 도시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교통의 이점(利點)과 정부의 기업, 대학 분산 정책에 따라 현재 12개 대학과 15개 산업단지, 4100여 개의 제조업체가 천안에 둥지를 틀었다. 인구도 2000년 42만 명에서 2024년 70만 명 선으로 껑충 뛰었다.

천안시는 내친김에 스타트업(start-up)을 다수 발굴해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으로 키우는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고자 한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천안시에는 현재 2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라며 “10년 안에 적어도 2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우리가 배출할 것”이라고 첨단 빅 테크 기업의 탄생을 확신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천안시는 2000년대 국내 SNS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싸이월드의 공동 창업자이자, 스타트업의 권위자인 이종원 호서대 학사부총장과 손잡고 ‘천안 미래 유니콘 C-STAR 육성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경영공학 박사이기도 한 이 부총장은 “천안을 비롯한 충청권엔 세계적 기술과 인력을 갖춘 기업이 많다”면서 “이들이 기업가 정신과 경영 기법으로 무장한다면 지역의 창업과 혁신 생태계는 고도로 활성화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두 사람은 8월 1일 천안 타운홀전망대에서 가진 ‘구루와 목민관 대화’에서 천안시가 목표로 하는‘한국판 실리콘밸리’의 밑그림과 실행 방안을 설명했다.

천안시는 민요 ‘천안삼거리’를 먼저 떠오르게 하는 정감 어린 고장 아니던가요?

박상돈 천안시장_ “예, 천안시는 고려시대부터 영남대로와 호남대로가 갈라지는 곳으로 수도인 개성과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지요. 이는 수도가 한양으로 바뀐 조선시대에도 큰 변화가 없어서 ‘천안삼거리’라는 민요가 널리 퍼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국민은 천안 하면 스타트업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겁니다. 4년 전인 2020년 9월 천안시는 국내 최초의 복합형 ‘스타트업파크 도시’에 선정됐습니다. 2022년 1단계 사업인 그린스타트업타운을 개소하고, 현재까지 200개의 스타트업을 선발해 육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약 300개 기업을 추가로 더 선정해 10년 안에 유니콘 기업을 적어도 2개 정도 배출하는 목표에 시정(市政)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천안 시민의 평균 연령도 42세에 불과합니다. 왕성한 경제활동과 육아가 동시에 이뤄지는 역동적인 도시가 바로 천안입니다.”

이종원 호서대 학사부총장_ “천안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K-스타트업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도시입니다. 판교와 비교해볼까요. 판교의 사업 기반은 아무래도 소프트웨어와 콘텐트가 중심이지요. 제조업 기반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죠. 그런데 콘텐트와 소프트웨어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한국보다 더 강하지 않나요. 천안은 달라요. 인근에 서산, 아산을 끼고 있는 천안은 세계적 반도체·디스플레이 패키지 생산기지이기 때문입니다. 천안은 판교에 없는 제조업 기반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천안에 사업장을 가동 중이고, 인근 서산은 현대자동차 미래 모빌리티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삼성, 현대 등 세계 1등 제조 기업과 관련된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밀집한 곳이 천안입니다. 천안은 한국만의 독특한 첨단 제조 기업 기반의 스타트업 단지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이게 천안의 미래가 판교의 그것보다 더 창창하다고 말하는 배경입니다.”

“시연회로 130억원 투자 유치한 혁신 창업가”


10년 내 유니콘 배출 목표를 언급했습니다. 준비 과정이 궁금하군요.

박 시장_ “날로 진화하는 우리 시의 스타트업 사업이 미래의 성공을 말해 줍니다. 저희는 올해 ‘천안 미래 유니콘 C-STAR 육성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 C-STAR’는 천안 스타트업(Cheonan-Startup)의 영문 줄임말입니다. 천안을‘중심(Center)’으로 스타트업들이 ‘도전(Challenge)’할 수 있는 ‘기회(Chance)’를 제공하고, 네트워크 ‘연결(Connect)’을 통해 스타트업의 별‘(STAR)’이 되자는 의미로 ‘C-STAR’라는 용어를 만들었지요. 이 프로젝트는 지난 4년 동안의 스타트업파크 사업의 반성과 심화 의지에서 출발했습니다. 200개에 달하는 기업을 선정은 했는데 누가 보석이고, 누가 돌인지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전도가 유망한 기업에는 1 대 1 맞춤형 지원을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천안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의 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었습니다. 그래서 이종원 호서대 부총장님과 함께 ‘C-STAR’육성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 겁니다. 천안시는 이 부총장님을 사업 단장으로 해서 천안그린스타트업타운, 천안과학산업진흥원,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3개 기관으로부터 우수 스타트업 30개 사를 추천받아, 2개월 동안 3차례 검증을 거쳐 8개 스타트업을 C-Star 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 부총장_ “모든 혁신은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싹을 틔웁니다. C-Star 기업 선정에 엄격한 잣대를 세웠지요. 첫째는, 기업과 연계된 세계적 기술을 가졌는가? 둘째, 그 기술을 경영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CEO 역량이 있는가? 셋째는, 비즈니스 모델 창출이 가능한가를 면밀하게 살폈습니다. 이를테면 첨단산업 생태계와 연결된 기술력, 경영 능력, 비즈니스 실행력을 선정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에는 천안시가 함께한다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실시간 소통 가능한 채널을 개설했지요. 박 시장님은 이들 기업 CEO가 참여하는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해 기업별 애로사항을 듣고 지원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지요. 기업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니까요. 나아가 전문가들과 상의해 대출 특례보증과 민간투자사와 펀드운영사를 추천하는 등 기업 활동에 직결되는 도움을 주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석같이 빛나는 창업가들을 많이 발굴했나요?

박 시장_ “대박의 예감을 갖게 하는 기업이 여럿 있습니다. 공기 정화 기업인 워터베이션은 아주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했어요. 보통 정화는 탁한 공기를 필터로 환기하는 방식이지만, 이 기업은 필터가 필요 없이 공기를 물로 끌어들여 정화하는 친환경 기법을 찾아냈지요. 매년 5%의 기업만 통과하는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선정되었고, 지난 6월 특허청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등 승승장구하는 중입니다. 이 회사 창업가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조언하는 세계적 컨설팅 회사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등 시야가 넓어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입니다. 웨어러블(착용형) 로봇 스타트업인 위로보틱스의 경쟁력과 잠재성은 펀딩 실적이 말해줍니다. 이 기업은 가벼운 웨어러블 슈츠를 허리까지 걸치면 보행이 불편한 사람도 자유롭게 걷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제품 단가도 200만~300만원 선으로 성능에 비하면 합리적입니다. 지난 4월 천안시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130억원의 투자금이 걷혔어요. 해외 판로가 개척된다면 한마디로 대박이 기대되는 스타트업이지요.”

“뉴럴링크와의 협업 기대되는 웨어러블 스타트업”


▎타운홀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천안 구도심 일대. 천안시는 구도심 일대를 차세대 스마트 도시 입지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이런 장비의 도움을 받아 단거리 이동(移動)이 가능해지면 굳이 요양병원 같은 시설에 의지하지 않고 자택에서 여생을 보낼 길이 열리는 것 아닌가요? 고령화 시대에 더 주목받을 기술 같습니다.

이 부총장_ “공감합니다. 고령화 시대의 이동 수단 확보 역시 이 스타트업의 사업 범주에 포함됩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세운 뉴럴링크는 사람의 뇌와 외부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칩을 두뇌에 심는 실험을 하고 있잖아요. 뉴럴링크 같은 회사가 위로보틱스와 협업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척추 질환자, 몸을 편하게 못 쓰는 분들에게 이동권을 부여하게 되므로 삶의 질과 양태가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또 관련 기술을 군사 용도로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군인이 만약 이 장비를 착용한다면 무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지요.”

박 시장_ “그러자면 먼저 탄탄한 인프라를 깔아야겠지요. 천안시는 지난 5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창업지원 기관 중 하나인 플러그앤플레이(PNP)와 파트너십을 맺고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아마 국내 지자체 중 최초의 시도 같은데, 지역의 유망 기업들이 유니콘으로 가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이와 더불어 천안시의 복합형 스타트업파크 2단계 사업인 이노스트타워가 2026년도에 준공을 앞두고 있고, 단국대의 캠퍼스 혁신파크도 조성될 예정입니다. 5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상주할 수 있는 혁신 창업 벨트가 조성되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새로운 성지 탄생을 기대하십시오.”

그럼 천안은 ‘제2의 판교’를 꿈꾸나요?

이 부총장_ “천안은 판교를 뛰어넘을 겁니다. 2009년 미국 보스턴이 그랬습니다. 당시 보스턴 시장은 보스턴 시포터 지역을 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해 지역경제 생태계 활성화를 꾀했습니다. 예산과 조직이 따로 지원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장은 현장을 발로 뛰어 반전 포인트를 만들었지요. 현지의 제약기업인 버텍스는 여러 곳에 분산된 사무실을 한데 모을 공간을 물색 중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창업경진대회 사무국에서도 창업자들을 위한 저렴한 사무실이 필요했지요. 이런 현장 정보를 접한 보스턴 시장은 부동산 개발 업체들에 기업과 창업자를 위한 부동산 개발을 권유했고, 입주 물량 확보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들어선 빌딩에 버텍스와 MIT 사무국이 입주하면서 시포트는 일약 첨단 혁신 지역으로 부상했지요. 2017년엔 보스턴이 실리콘밸리가 있는 베이 지역을 제치고 미국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께서도 그에 못지않은 열정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례를 개정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펀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스타트업이 만든 웨어러블 기기를 직접 착용하고 시연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스타트업의 판로 개척에도 적극적입니다. 제가 천안이 판교를 앞지를 수 있다고 보는 근거입니다.”

창조성의 원천, 천안의 문화·역사 감수성


▎삼성전자 천안캠퍼스 전경. 천안시에는 삼성, 현대 등 세계 1등 기업과 관련된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다수 밀집해 있다.
박 시장_ “판교는 테크노밸리 등 고층(高層)의 고밀도 집중화 시설로 주로 돌아갑니다. 저층(低層) 분산형으로 조성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는 구조부터가 사뭇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요. 천안엔 상대적으로 넓게 분산된 부지를 아우르는 저개발 지역이 많아요.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천안 타운홀전망대 주변은 구도심에 속하는데, 대부분 도시 재생 사업 대상입니다. 도시가 완성 단계에 접어든 판교보다 천안은 땅값도 싸고 유휴 부지가 풍부해 차세대 스마트 도시로 최적지라고 하겠습니다. 천안은 서울보다 면적이 넓어요. 수요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횡적(橫的)으로 확장이 가능한 도시입니다. 나아가 판교처럼 고층의 고밀도 연구시설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경부선 철도 통과 구간 주변을 종적으로 집적화할 수도 있습니다. 천안시에는 현재 15개 산업단지가 가동 중이며, 추가로 15개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 중입니다.”

이 부총장_ “천안에는 있고, 판교엔 없는 게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바로 첨단 제조 공장입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집적 산업 단지는 본사와 연구소, 글로벌 사업 담당 기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까운 거리 내에 생산라인이 자리해야 합니다. 천안은 그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조와 컨트롤타워가 긴밀하게 연결될 새로운 모델, 진정한 의미의 K-스타트업의 모델을 천안에서 창출하겠다는 것입니다. 천안엔 특히 세계적 첨단 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여기에다 창의성의 원천인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공동체가 바로 천안시입니다. 천안시는 특히 고품격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문화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에서 창조도 일어납니다. 천안은 스토리텔링이 있는 도시입니다.”

박 시장_ “천안은 과거 교통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요지이기도 했습니다. 천안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사실상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합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전쟁 과정에서 천안은 ‘오룡쟁주(五龍爭珠, 다섯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얻고자 다투다)’형의 지세(地勢)라서 이곳에 큰 관서를 설치하면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무난히 3국 통일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하의 건의를 듣고 서기 930년 8월 8일(음력) 이곳에 ‘천안도독부’를 설치했습니다. 천안(天安) 지역을 중시하면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6년 뒤인 936년 후백제의 견훤이 태조 왕건에게 투항하면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지요. 이후 고려 현종은 1021년 천안에 200칸 규모의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 창건을 지시했죠. 주변에 40칸 여인숙도 만들어 나그네를 보호하라는 엄명도 내립니다. 이 절의 창건 기록을 적은 ‘봉선홍경사 사적 갈비(碣碑)’는 국보 7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춤 축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와 새 무대로의 도전”


▎역내 스타트업이 만든 웨어러블 기기를 직접 착용하고 시연해보는 박상돈(가운데) 천안시장. / 사진:천안시
이 부총장_ “제가 알기로는 박 시장님이 올해 들어서만도 지역의 8개 대학을 돌며 이른바 ‘천안학(天安學)’ 특강을 하는 등 천안시의 역사와 정체성, 지속가능한 미래를 청년들과 공유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천안의 인문, 지리, 역사, 교육, 교통, 산업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해 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외 이미지 개선에도 활용하자는 게 천안학의 취지이지요. 천안학은 2009년부터 제가 속한 호서대를 비롯한 인근 8개 대학 교양 과목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교수와 향토 학자, 지역 전문가, 기업인 등이 강사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박 시장께서도 특별 강사로 참여한 것이고요.”

박 시장_ “천안은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특히 천안흥타령춤축제는 천안삼거리, 유관순 열사 기념관, 독립기념관, 12개의 대학 등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매력을 하나로 묶는 가교 역할을 하지요. 원래는 천안삼거리의 옛 전통과 ‘흥’ 문화를 모티브로 ‘천안삼거리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2003년 ‘천안흥타령춤축제’로 그 명칭을 변경해 올해로 20회를 맞는 춤축제입니다. 놀이는 본질적으로 위험, 불확실성, 긴장 같은 요소를 내포합니다. 천안흥타령춤축제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다양한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춤꾼들이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은 큰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결과와 새로운 무대에서의 도전은 축제의 흥을 더해줍니다. 이렇게 천안흥타령춤축제는 놀이와 흥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오는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천안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될 천안흥타령춤축제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 53개국의 내로라하는 춤 마니아들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천안의 매력에 빠져 판교행(行) 접은 스타트업


▎박상돈(오른쪽) 천안시장과 이종원 호서대 부총장은 “전도가 유망한 스타트업에는 1 대 1 맞춤형 지원을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며 K-스타트업 육성 의지를 밝혔다.
싸이월드의 성공과 좌절의 경험, 교훈이 천안시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나요?

이 부총장_ “제겐 좀 부끄러운 경험이지요. 열심히는 했는데 크게 성공을 못 했죠. 저는 싸이월드의 2대 주주이자 기획, 전략,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펀딩이나 외부와의 전략적 제휴 같은 일도 제 몫이었죠. 이제 제가 호서대에 몸담은 지도 17년이 돼 갑니다. 창업과 성장에 관한 교과목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계속 반성하게 되더군요. 싸이월드에서 제가 한 잘못된 결정과 행동이 더욱 또렷하게 부각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생각도 정리하게 됐어요. 첫째, 비즈니스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둘째, 좋은 기술이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돈을 벌어준다. 셋째, 비즈니스 할 때는 충분한 경영학적 지식을 갖고 하는 게 좋다 등입니다. 천안 스타트업 하는 분들은 정말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해요. 여기에다 기업가 정신, 경영학 지식을 보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어요.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기업에서 혁신을 이끄는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죠. 그런 스타트업을 선발해서 육성하고 있습니다. 천안 스타트업 중에는 기업이 가진 기술에다 비즈니스 마케팅, 펀딩을 결합하면 세계 1등 기술 기업으로 성장할 후보가 적지 않습니다.”

박 시장_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벤처기업,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이 부총장 같은 분을 모시게 돼서 저희로서는 참 운이 좋은 셈입니다. 지역에서 이런 역량을 가진 분을 모시기가 쉽지 않거든요. 첨단 기술을 다루는 스타트업 중에는 사업을 제대로 하자면 판교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경우도 있어요. 판교에 인력과 자본, 정보가 다 몰리니까요. 어떤 CEO는 이 부총장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로 마음을 바꿔 천안 잔류를 결정한 분도 있습니다. 천안시와 호서대는 연구 인력과 연구 공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지요. 이런 의지와 염원으로 응축된 천안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천안시는 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며, 전 세계의 창업가와 기업가들이 꿈을 펼칠 무대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떠오르는 스타트업의 성지 천안’을 꼭 기억해 주세요.”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