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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우리 시대 문학기행 | 손창섭 <비 오는 날> 

장마 같은 전쟁과 사라진 ‘그 집’의 환영
전쟁·가난·허기… 그 시대의 절망 속에서
모르는 세월들에 느끼는 죄책감 

사진 김현동 월간중앙 사진기자 [lucida@joongang.co.kr]
부산의 40계단 주위에는 몇 사람이 얼음처럼 멈춰 섰다. 물동이를 들고 가는 단발머리 소녀와 뻥튀기 아저씨, 그 옆에 귀를 막고 선 아이들까지…. 한국전쟁 속 인물들이다. 손창섭의 <비 오는 날>에 등장한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나 소설가 윤고은이 우울하고 나약하며 날카롭고 불쾌하기까지 한 <비 오는 날>의 그들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고속철은 거짓말처럼 몇 초 단위의 과거를 만들어낸다.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차창 밖 풍경. 고속열차 안에서 풍경을 감상한다면 그것은 죄다 꼬리뿐이다. 시속 300km만큼 빠르게 과거가 되는 풍경, 내가 감지할 수 있는 현재는 그 풍경의 꼬리들뿐이다. 마치 힘센 청소기 흡입구로 휙 빨려들어가는 먼지처럼, 현재가 사라지고 있다. 철로 위를 순식간에 흘러가 영원히 과거가 되고 마는 현재들, 그 안타까운 꼬리들.



2시간 반 꼬리를 좇다 보면 종착역에 닿는다. 철로의 끝, 부산역은 만삭의 몸처럼 잔뜩 팽창해 있다. 모든 철로가 그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경부선은 유독 사연이 많은 노선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경부선 위로는 수많은 이별과 미련과 새로운 기약들이 흘러갔다. 생겨나자마자 조선의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데 동원되었고, 징용 끌려가던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나던 사람들, 공부하기 위해 혹은 공부를 지속할 수 없어 올라탄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1950년대, 피란민들이 경부선에 올라탔다. 철로가 식을 틈도 없이 열차는 경부선 위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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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호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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